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최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 등이 논란 끝에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으나, 모두 청와대에서 임명되었다. 이로써 현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임명된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15명으로 늘었다. 인사청문회 비준이 없으면 임명이 불가능한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과는 달리 법적으로 임명에 구속을 받지는 않지만, 그럴 바에는 뭐 하러 굳이 청문회를 여느냐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래서 현 야당에서는 “모든 인사청문회 대상 고위직에 청문회 통과를 필수조건으로 삼자”는 주장이 나오고, 한편 여당에서는 “후보자의 도덕성을 따지고 드는 청문회가 아니라 정책 검증 위주의 청문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슬프게도, 양쪽 말 모두 일리가 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의회에서 필요한 증인들을 소환해 질의응답을 하는 자리’라는 뜻의 청문회의 시초는 의회주의가 발달한 영국, 1215년의 ‘대헌장’에서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인사청문회는 1787년, 미국 헌법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군주제 영국에서 피를 흘리며 독립한 미국은 독재정치의 가능성을 어떻게든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13개 주가 독립전쟁이라는 뜻에서는 한때 하나가 되었지만, 워낙 입장이 다양하고 유대관계가 희박하다 보니 자칫하면 분열에 빠져 애써 이룬 독립이 금방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13개 주 전체를 조율하는 연방정부를 세우고, 그 대표로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 대통령이 군주와 같은 권력자로 돌변하면 안 되겠다 싶어 여러 가지 견제 장치를 헌법에 두었는데, 그 한 가지가 인사청문회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연방정부의 고위공무원에 대해 의회가 까다롭게 점검하고, 적격이다 판단해야만 임명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시대가 지나며 연방정부와 미국 대통령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인사청문회 대상자도 늘어만 갔다. 현재 연방정부 공직자로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직위는 1200개가 넘는다. 2000년에 처음 인사청문회를 도입했으며, 63명이 청문회 대상이고 그 가운데 23명만 인사청문회 통과를 얻어야 임명이 가능한 한국에 비하면 이 분야에서 확실히 선진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 인사청문회는 연륜과 규모만 앞서는 것이 아니다. 일단 한국에 비해 매우 엄격하다. ‘이해충돌방지원칙’이 있어서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측근 인사가 장관에 임명되거나 대법원장의 동기, 동창이 대법원 판사가 되거나 하는 일을 원천 봉쇄한다. 자료 제출에 있어서도 우리는 청문회에 제출할 신상자료가 △직업 △학력 △경력 △병역 △세금 납부 실적(소득세, 재산세, 종합토지세), △범죄경력에 그치는데 미국은 여기에 재산의 거래 내역도 넣고 있다. 재산을 은닉하거나 특정 고위직과 인맥을 형성한 정황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 청문회에서는 △국가기밀 △근친자의 형사책임 가능성 △업무상 비밀 등의 이유로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런 핑곗거리가 없어도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만이다. 미국 청문회에서 그럴 경우 의회모독죄다. 거짓말이나 증언 거부를 해도 위증죄가 되는데, 우리는 증인의 불성실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위조된 자료를 제출해도 뒤탈이 없다.

사실 미국 인사청문회에서는 ‘빠꾸’를 맞는 일이 많지 않다. 청문회가 우리보다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청문회에 서기 전에 행정부의 낙점 과정에서 온갖 까다로운 검증을 다 하기 때문이다. 우리네처럼 청와대 인사수석과 민정수석만이 참여하는, 그것조차 때로는 형식적 검증에 그치는 ‘코드인사’와는 격이 다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어지간하면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의 도덕적 적격성을 묻는 경우는 없고, 후보자가 해당 분야에서 어떤 정책을 펼지에 대한 토론회로 전개되는 수가 많다.

우리는 어떤가. 여당이면 무조건 후보를 밀어주고, 야당이면 막무가내로 흠집을 내는 경우가 보통이다. 여와 야의 차이만 뚜렷하고,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취지는 없다. 안으로 굽는 팔, 내로남불의 불문율화도 도가 지나치다. 그러기에 한국 민주주의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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