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가 주름진 한 중년 남성이 담배 은박지를 빼낸다. 평평하게 편 은박지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웃고 있는 아이들을 그린다. 은박지가 뚫어지지 않게 신중을 기하며 선을 긋는다. 그 후 검은색 유화 물감을 발라 선에 색을 입힌다. ‘이중섭’의 실험 정신이 담긴 은지화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중섭에게 가족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6.25 전쟁 때 가족과 함께 피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를 힘들어하는 가족을 일본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을 보지 못한 그리움을 작품으로 많이 그려낸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그리운 제주도 풍경>(1950)이 있다.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서 지낸 생활이 드러나 있다. 이외에도 <길 떠나는 가족>(1954)처럼 단란한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가족을 보지 못하는 그리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눈물 젖은 편지를 써내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의 마음과는 반대로 해맑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1950년대 당시 이중섭은 피난민이었기에 별다른 돈벌이가 없었다. 항상 궁핍한 그는 먹거리를 구하기도, 난로를 때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작품에 대한 실험 정신과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 당시 돈을 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소재가 담뱃갑 안에 있는 은박지였다. 이중섭은 은박지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 끝에 그의 예술에 대한 개성을 보여줬다. <신문을 보는 사람들>(1950년대) 작품에 구겨져 있는 은박지의 선으로 신문과 사람 얼굴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중섭은 유난히 소에 애정이 많았다. 소를 온종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몰려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흰 소>(1955)를 보면 그의 남다른 관찰력과 표현력에 대해 알 수 있다. 흰 소는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 민족을 상징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를 극복하려는 민중을 역동적인 소로 표현했다. 
  그는 소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표현기법을 사용했다. 투박한 붓칠로 살아 있는 생동감과 강한 느낌을 보여줬다. 예로 머리 부분과 관절 부분을 굵고 진한 선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거친 선으로 화가 난 듯 불만 가득한 표정이나, 험악한 기세를 표현해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중섭 그림은 현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그의 삶을 작품에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는 보는 이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중섭 미술관 전은자 학예연구사는 “작가의 마음이 작품에 진실하게 담겼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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