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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가 달콤하고 아싸가 씁쓸한 이유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31 03:02
  • 호수 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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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아싸~!” 예전에는 뜻밖에 기쁜 일이 생겼거나 원하는 일을 이루었을 때 내는 감탄사였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 ‘아싸’는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로 조직의 구성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으로 맴도는 사람을 가리킨다. 

  또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인 ‘인싸’가 있다. 인싸는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친화력이 좋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대학생 인싸들은 개강 첫 주에 여행 간다”가 그 예다. 인싸 가운데서도 활동성과 친화력이 더 뛰어난 사람을 핵인싸라고 부른다. 
 

우리는 왜 아싸가 아닌 인싸가 되고 싶은 것일까?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특징 중 하나는 친구 사이에 우정을 쌓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모든 친구는 처음 만날 때는 낯선 존재였다.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우정이 깊어지면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과 약점까지 보여주는 든든한 존재가 된다.
  동물들 사이의 우정은 극히 드물게 몇몇 종에서만 관찰된다. 반면 인간에게 우정은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친구가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인지 모른다. 또 친구를 사귀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 사본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본능적 목적일 수 있다.
  인간이 처음 누군가를 사귈 때는 내가 밥을 몇 끼 사주었고, 친구가 밥을 몇 끼 사주었으니 ‘누가 이익이고 누가 손해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서로 누가 더 많이 이익을 취했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처럼 친구가 선사하는 첫 번째 가치는 ‘편안함’이다. 
 

1997년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고든 슐먼 교수는 뇌 영상 분야의 학술지인 〈인지신경과학저널〉에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기억, 시각, 언어와 같은 특정 정신과정이 관여하는 뇌 부위를 알아내는 양전자단층촬영(PET) 기법을 활용했다. 
 

실험 참가자가 감마선을 이용한 방사선 추적물질을 흡입하면, 연구자는 추적물질이 함유된 피가 뇌의 어느 부위로 흘러가는지 관찰했다. 뇌의 특정 부위가 활발히 활동하면 그 부위로 더 많은 피가 흘러들어 가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실험 참가자에게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더 활동적으로 바뀌는 뇌 부위를 관찰해 그 결과를 해석해 왔다. 그런데 슐먼 교수는 앞선 상황에서 어떤 과제의 수행을 하다가 멈추었을 때 더 활동적으로 바뀌는 뇌 부위가 어느 곳인지 관찰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뇌가 본능적으로 활성화되는 곳을 찾아본 것이다. 
 

이때 활성화된 뇌 부위를 슐먼 교수는 ‘기본 신경망(Default Network)’ 혹은 ‘기본상태 신경망(Default Mode Network, DMN)’이라 명명했다. 과제 수행의 휴식기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 혹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 뇌는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돼 있던 것이다. 
 

인간의 뇌가 이렇게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사회인지’에 집중한다는 것은 성공적인 삶을 위해 사회적 지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인지 활동이 왕성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가 고프거나 몸이 불편하면 엄마를 찾는다. 그래서 엄마가 곁에 있어야 울음을 그친다.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더 테레사 수녀는 “타인과 함께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질병”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뇌는 사회적 세계에 대해, 그 세계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습관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프로그램된 것이다.
 

인류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주고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는 것은 ‘사회인지’ 본능인 셈이다. 인싸가 되고자 하는 욕구는 음식이나 물에 대한 욕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근본 욕구다. 이 때문에 고통과 쾌락체계는 신체적 고통이나 보상과 똑같은 신경구조에서 사회적 관계에 대한 달콤함과 씁쓸함을 맛보게 된다.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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