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상해 황포탄 세관 부두에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의 오성륜과 이종암 그리고 김익상이 일본군 육군 대장인 다나카 기이치(이하 다나카)에게 총탄을 발사한 것이다. 하지만 다나카를 저격하지 못하고 지나가던 사람이 맞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 놀란 다나카는 차 안으로 긴급히 숨었다. 그 순간 의열단 김익상이 재빨리 총탄을 발사했으나, 다나카의 모자만 관통했다. 의열단의 상하이 황포탄 의거는 실패하고 말았다.

의열단은 1919년 결성돼 일본의 고위 공직자 등의 암살을 목표하는 독립운동단체였다.  1922년 3월 28일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 가 필리핀 마닐라로부터 귀국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의열단은 다나카를 저격하기로 결행했다. 명수로 알려진 오성륜이 제일 먼저 다나카를 저격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이러한 치밀한 계획에도  해당 의거는 실패하게 됐다.

거사 당일 의열단의 의거는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상해의 한국 사회를 흥분시켰다. 또 독립신문은 ‘김, 오 양 의사가 다나카를 죽이고자 함은 오직 우리 민족의 공분(公憤)을 세계에 선포코자 하는 수단에 불과한지라’며 ‘사업은 성공을 목적함이나, 목적하다가 실패한 사업은 실로 그 가치가 동일하다 하노라’고 전했다.

이들은 저격에 실패한 후 곧바로 도주했으나, 김익상과 오성륜은 경찰에 붙잡혔다. 김익상은 일본 나가사키로 압송돼 재판을 받고 20년간 복역한 뒤 출소했다. 이후 그의 행방은 알져지지 않았다. 경찰에 붙잡혔던 오성륜은 계속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김용달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의열단과 의열투쟁의 의의>에서‘의열단은 한국의 독립과 더 나아가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 독립운동 이념과 다름없다’라며 ‘자신의 생명까지 던져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통치에 대항한 단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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