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골반을 틀며 걷는 남자. 선을 따라 힘겹게 걷는 모습은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걸음걸이만이 반복되는 영상의 길이는 자그마치 10분이 넘는다.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의 영상작품 <Walking in an Exaggerated Manner Around the Perimeter of a Square>의 장면이다. 내용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 영상이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비디오아트란 비디오를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을 말한다. 1960~70년대에 비디오 조각과 환경을 통한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미디어 아트의 한 맥락으로 확립됐다. 현대 예술의 한 경향인 비디오아트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정의내리기 모호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이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 분류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예술적 가능성의 추구에서 생겨난 것과 형식주의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으로 구분된다. 양쪽 모두 제작자보다 감상자의 주체를 중시하는 정보의 개념에 기초를 둔 표현을 추구한다. 이러한 비디오아트는 비디오를 매개체로 한다는 특이점으로 인해 어떤 예술보다도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 작가 브루스 나우만은 작업과정을 소재로 한 프로세스 아트 작가로 불리면서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초기 비디오아트 예술가다. 1964년부터 조각, 비디오,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1968년 뉴욕에서 가진 첫 개인전에서 네온사인 조각을 선보이며 신체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주로 조각과 비디오를 이용해 작업했다. 완성된 작품보다 제작되는 과정을 더 중요시 여겼기 때문이다. 영상은 작품의 결론뿐 아니라 과정도 담기기 때문에 그에게 좋은 예술표현 매개체였다. 

브루스 나우만의 비디오아트는 주로 자신이 영상 속 대상이 된다는 특징이 있다. 영상 속의 나우만은 양식화되고 반복적인 행동을 계속한다. 관객들은 이러한 영상에서 지루함을 느끼기 쉽다. 지루하고 기괴하게도 느껴지는 영상이 미학적 가치를 갖는 이유는 뭘까. 지루함을 통해 관람자가 시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내용이 꽉 차있을 땐 느껴지지 않는다. 반복되고 지루한 영상을 통해 사람들은 시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지루함은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미학적 지루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의 영상은 자신의 신체를 인위적으로 구속하고 그것을 따르려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같은 행위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은 신체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지루함 속에서 브루스 나우만의 반복적인 행위와 신체를 보며 관객들은 스스로의 시간과 신체를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성훈 (성균관대 미술학) 교수는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읽기> 논문에서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은 마치 관객들로 하여금 심리테스트적인 효과를 지닌다’라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작가 자신은 스스로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며 숨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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