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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타: 배틀 엔젤> 사이보그 소녀? 사이보그 전사?
  • 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 승인 2019.03.10 04:11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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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지구가 황폐해진 때 26세기, 인류는 공중도시 ‘자렘’과 지상의 ‘고철 도시’로 분리되어 살아간다. 고철 도시의 이도 박사는 쓰레기 더미에서 한 인간형 사이보그를 발견한다. 그는 사이보그의 파괴된 신체 부위를 재생하여 부활시키고 ‘알리타’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사이보그 알리타는 자신이 과거 자렘의 전사였던 기억을 되살리고,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고철 도시에서 해야 할 일은 깨닫는다.

사이보그 인간이라는 캐릭터는 SF적 상상력의 큰 특징이다. 거기에다 애매한 기억에 매달려 스스로를 자각하는 주인공, 그리고 둘로 나뉜 공간은 현실의 비유로 기능한다. 따라서 판타지 세계를 그리는 SF라는 장르는 매우 현실 반영 적이다.

사실 <알리타>는 위의 스토리가 전부고, 러닝타임 대부분을 신체 절단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결투 액션과 모터 볼 경기가 펼쳐지는 스피디한 레이스에 할애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평자는 ‘화려한 스펙터클, 허술한 서사’라는 뻔한 클리셰스러운 코멘트를 붙였다.

사전 정보 없이 들어가서 한참 신나게 몰입하며 영화를 즐기던 필자는 <벤허> 전차 씬 이후로 가장 손에 땀을 많이 쥐며 보고 있던 죽음의 레이스에서 영화가 끊기자, 영화가 이리도 허망하게 끝나버리다니 읊조리며 탄식하고 말았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일본 작가 기시로 유키토가 1990년부터 5년간 연재한 만화 <총몽>이며, 기시로는 아직도 이 작품을 완결하지 않았다. 영화를 기획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은 2004년부터 각색에 매달리다 <아바타>를 먼저 만들고 이어 속편까지 준비하느라 바쁜 터에 로버트 로드리게스에게 연출을 맡기고 뒤로 물러섰다. 총 3부를 기획하고, 1편은 원작 1부 전반부를 주요 내용으로 하다 보니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편은 맛보기라며 험악한 평은 자제하자고 할 수는 없는 일. 이 자체로서 완결된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우리 시대에 AI는 대중적으로 상용화될 것이다. 로봇이 육체노동을 하고, 가사를 담당하며, 전투도 하고, 심지어 말벗이 되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그러니 미래 세계를 그리는 SF 영화 속 현실은 성큼 우리 현실 속으로 들어와 있고, 수십 년간 진화해온 SF 캐릭터와 세계관은 당장 우리의 고민이 될 것이다. 기계와 인간의 융합은 현실이 되었고, 곧 우리 곁에는 수많은 알리타가 자리하게 될 것이며, 그만큼 알리타의 고민은 우리의 고민이 될 것이다.

<알리타>는 그간 걸작으로 추앙받았던 많은 SF 전작들의 고민을 단순화한다. △<블레이드 러너> △<로보캅> △<토탈 리콜> △<공각기동대> △<터미네이터>의 사이보그들은 인간을 위한 존재인 자신의 운명에 저항했다. 죽음과 희생 앞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게 된 사이보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기억의 진위를 가리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개척하기 위해 몸을 불태웠고, 스스로 운명을 선택함으로써 존엄을 찾았다.

인간 남자를 사랑하는 알리타는 뜨겁게 사랑하고 정의롭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갈등하지는 않는다. 여타 일본 원작 사이버 펑크 물들이 그러하듯 사이보그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하지 않아서 보기에 안심이 되지만, 명백한 십대 소녀인 알리타는 사랑 때문에 길을 나서는 이성애자 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점은 <타이타닉>과 <아바타>에서 끈질기게 보여준 제임스 카메론의 세계관과 맞닿아있다.

이성애 로맨스를 최고로 여기는 캐릭터가 뭐 그리 큰 문제이겠냐마는, SF는 평등사회를 상상하는 실험 공간이고, 그 새로운 공간에서까지 명징한 젠더 구별이 필요할까 하는 다소 가소로운 상상을 했다.

속편에서는 자신을 창조한 이도 박사와의 멘토링 관계나 또래 인간 남자와의 성적 긴장감 외에 다른 대안적인 관계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젠더리스(gender-less)나 크로스 젠더 같은 걸 기대해보기도 한다. 최초의 SF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의 저자가 여성인 메리 셸리였다는 것은 SF가 여성적 상상력에서부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미래를 상상하는 SF가 위계와 구별을 위반하는 대안적인 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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