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항공우주공학석사 18)

대학원 생활은 쉽지 않다. 학부 시절부터 들려오던, 이른바 “도망쳐!” 같은 소문들은 말 그대로 농담으로 웃으며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꿈꿔왔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다고 장밋빛 희망에 가득 차서 휴학 한번 없이 달려왔다. 그게 독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 갓 1년을 채운 석사생의 눈에 대학원이란, 더 큰 사회로 진출하기에 앞서 ‘전문가 준비생’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처럼 보인다. 새로운 관계 속에 급작스럽게 내던져져 미처 알지 못했던 약점은 들쑤셔지고 무지에 대한 초조함과 불안감으로 뒤범벅이 된 무시무시한 기회다. 전문가가 되고 싶어 그런 기회를 잡지만 도리어 느린 학습 능력만 자각하고 장밋빛 희망은 핏빛으로 변해 압박을 준다. 게다가 대학원의 일상은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이 주를 이루는지라 정신을 차리고 보면 우울 속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걸 재차 물어볼 때, 물어본 걸 또 물어볼 때, 왜 아직도 모르느냐는 책망 앞에서 지극히 깊은 자괴감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어느새 적응해서 서툴게라도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라는 답 없는 질문이나 던지면서.

나는 여태 좋아하는 것을 쫓아 달려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내 능력의 유무는 덮어둔 채 마냥 그게 예뻐서 숨 가쁜 줄도 모르고 달려왔다. 어떻게 좋아하는 걸 찾고 그리 자신 있게 직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이것은 내게 당연했다. 길은 잘 닦여있었고 나는 그 위로 걷든 달리든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떨어지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에게 거부당하고 가로막힌 길을 돌아 돌아가다 결국 길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다 관둬버리게 만든다. 꿈꾸며 즐거워하고 그래서 더 힘을 내던 기억은 자기비하와 수치심으로 뒤덮인다. 내 모자람과 멍청함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 않았냐고, 여기까지 끌고 온건 순전히 내 욕심이라고. 그렇게 진흙탕 같은 1년을 보내며 고통 없는 결실은 없다-라는 말을 되새겼다. 결실이라는 찰나의 반짝임을 위해서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점 이상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다시 좋아하는 것을 쫓을 용기를 내도 될까,’ ‘그런 확신은 나 같은 것에게 너무 과분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의 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고 여전히 변함없이 성장통을 느끼며 제자리에 멈춰 서있다. 매일 새로운 약점이 드러나고 수치심은 똑같은 곳을 할퀸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편에서 튀어나올 기회를 노리고 있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도…….’라는 여운만 남겨도 득달같이 들러붙을 즐거움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러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었지’라는 자조로 우울을 밟고 서서 남은 기회 끝자락을 움켜쥔다. 아직 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도 이렇게 하루를 쌓아나가다 보면 협소하더라도 나 하나 정도 서 있을 발판은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다시 시작해야겠다.

무엇을 꿈꾸며 걸어가는지 모를 대학생, 대학원생 그리고 어떤 길 위에 서 있는지 모를 분들에게. 언제 우울함이 찾아올지 얼마나 길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괜찮을 거라고 작게나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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