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사회·문화부장

 

홀가분하지가 않다. 한 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며 2년 6개월의 기자생활을 버텨오다, 그 끝이 보이는 시점인데 말이다. 되레 허탈하면서 두렵기까지 하다. ‘이젠 뭘 해야 할까’라는 막연한 두려움. 다른 목표로 향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펼쳐져 있다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한데 그렇지 않다. 절대 이르지 않은 군 입대를, 내년에는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자격증도 따고 인턴 생활도 해보며 스펙을 쌓고 싶지만, 그러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나도 애매하다. 물론 그 수개월마저 허투루 쓰고 싶지 않지만, 어차피 부질없다는 생각만 맴돈다. 2년 가까이 예정된 공백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허무할 뿐이다.

막연하게 두려울 수밖에 없는 건 이미 겪어봤던 탓이다. 3년 전 딱 이맘때였다. 끝나지 않을 것 만 같았던 수험생활이 단 하루 만에 끝나버렸다. 갑작스레 마주한 자유는 반가웠다. 마냥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간 못 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울 따름이었다. 허나 들뜬 기분은 썩 오래가지 않았다. 해야 할 것이 명확했던 시간이 끝나자 곧 불안감과 공허함만이 나를 지배했다. ‘뭐든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신문사 입사 역시 그 때문이었다. 한 학기 대학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바삐 살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자유로운 시간이 꽤나 많았다. 그게 불안했고 이내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다 신문사에 들어오게 됐다. 다행히도 매년 수십 번의 발행으로 쉴 틈은 없었고, 불안감 역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신문사를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무력감에 빠질까 벌써부터 겁이 난다.

‘의무’와 ‘책임’이 없는 삶은 여전히 낯설다. 항상 ‘해야 할 일’이 있었던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마주하는 건 익숙지 않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감만 자연스레 번져갈 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때까지의 내 삶이 그래왔기 때문이다. 내 미래를 위한 거라며 사회가 제공해주던 ‘의무교육’ 속에서 12년을 보냈고, 나를 뒷바라지해주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책임감’을 쥐어짜낼 수밖에 없었다. 신문사도 마찬가지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기획과 취재에 열중했고, 늦은 밤에는 못다 한 공부와 과제를 벼락치기하기 급급했다. 퇴사하겠다고 빈번히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책임감을 앞세우며 정해진 임기를 완벽히 매조지기 위해 버텨왔다. 그게 내 삶에선 자연스러웠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쉬고 싶다’. 속에서만 수없이 생각했던 그 말을, 이제는 크게 내뱉고 싶다. 모든 일에서 ‘나’는 항상 뒷전이었다. 덧없이 끌려 다니기만 했고, 그저 지쳐만 갔다. 더는 나 자신을 의무감에 짓눌리게 하고 싶지 않다. 애매하게 남은 잠깐의 시간이라도 오로지 나를 위해 쓰고 싶다. 이번마저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내 일생이 바쁜 일상과 우울에 찌들 것만 같다. 여태껏 나는 그래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그 고집, 가끔은 좀 놓을 때가 필요하다.

투박한 글로나마 본심을 털어놓으니, 한결 홀가분해진다. 수없이 돌려 들었지만 차마 따라 부르지는 못했던 한 노래의 가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멈춰 서도 괜찮아.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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