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감독 이광국 | 2017)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한다. 경유(이진욱 분)와 나머지 인물들은 탈출한 호랑이를 말하며 계속 두려워한다. 생존과 직결된 본능적인 이유 탓일 것이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속 인물들은 호랑이를 막연하게 무서워 해 피할 뿐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끊임없이 회피하며 추운 겨울을 겪는다. 이들은 결국 어떻게 될까.

경유는 정처 없이 길을 떠돈다. 같이 살던 애인과 갑자기 이별했기 때문이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멈춰 있다. 그저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기로 한다. 그런 그가 대리운전 손님으로 반가운 이를 마주한다. ‘잘 지냈어?’. 경유가 옛 애인 유정(고현정 분)을 보고 한 말이다. 유정은 경유가 소설을 썼을 때 만난 사람으로, 이미 등단을 한 어엿한 작가다. 

유정은 경유에게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제의한다. 그리고 어차피 외부에 발표도 안했으니 경유의 소설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한다. 이에 경유는 분노가 극에 치닫는다. 유정이 자신에게 접근한 목적이 소설을 뺏어오기 위해서 라는 것에. 하지만 그 이유만 있지는 않다. 애써 숨겨오고,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탓이 더 크다. 소설을 외부에 드러낼 용기가 없는 모습 말이다. 유정은 경유 안에 꽁꽁 숨겨둔 모습을 들춰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만난 것이다.

또다시 경유는 길에 내던져 졌다. 이제는 아무 인연도 없는 대리운전 손님한테도 모욕감을 느낀다. 돈을 주지 않고 역정을 내거나 폭력을 가하는 이들을 만난 것이다. ‘비참하고 나약한 자신’에게 화가 치솟는다. 그러다 한 손님을 목적지에 내려주고 가던 중,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는다. 겁에 질려 뒤돌아 도망친다. 그런데 조금 전 그 손님이 피를 흘린 채로 있다.‘살려주세요’라고 말하면서. 경유는 그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며 자신의 모습을 본다. ‘또’ 두려워 도망치는 결정을 해버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끝내 그는 강변 앞에 서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라고 노트에 적는다. 수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자신의 본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어 소설 발표를 미루고, 애인에게 얹혀살고, 사람들에게 푸대접받는 모습 말이다. 그러다 그에게 호랑이가 다가온다. 이제 그는 호랑이가 무섭지 않다. 두려움보다 무서웠던 것은 두려움에 지레 피했던 행동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영화는 누구나 경유처럼 행동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영화는 경유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다른 인물도 별반 다르진 않다. 자신의 상황에서 계속 도망치려 한다. 이별했던 애인도. 옛 애인 유정도. 아마 이들도 경유와 똑같은 결말을 마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회피는 자신의 처지를 방치한 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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