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살지 않는 집. 방치되면 각종 문제를 야기한다. 이를 막고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여러 방안을 내고 있는데,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문화공간이 된 빈집은 어떤 모습일까?

빈집, 예술공간으로 바라보다

인구 저성장으로 빈집이 갈수록 늘어나는 실정이다. 빈집은 사람이 살지 않아 비어있는 집을 뜻한다. 전국에 빈집은 약 107만 개로 20년간 3배 정도 증가했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말 기준, 부산시의 빈집(상수도 공급이 6개월 이상 중단된 주택)은 14,090채에 이른다. 

빈집이 늘어나는 데에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빈집이 △도시경관 훼손 △범죄 △안전 문제 등 각종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백기영(유원대 도시지적행정학) 교수는 “빈집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화재 위험성도 크고 도시 경관을 해칠 수도 있다”라며 “청소년들이 빈집을 아지트로 삼아 비행을 일삼는 등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러 방안 중에서 빈집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에서 주택을 임대·기부받아 △예술인의 창작 공간 △지역민의 문화 향유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충청북도 청주시에는 빈 가정집과 음식점을 개조한 4개의 문화공간이 개관됐다. 시각 콘텐츠, 대중음악 등 분야별로 공간을 나눠 지역 예술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에서도 각 예술인이 지역민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다. 부산문화재단도 작년부터 빈집을 예술인과 지역민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반딧불이 사업’을 실시하는 중이다.

예술인, 지역민, 지역까지 ‘일석삼조’

예술인들이 창작공간을 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딧불이 5호점 박정은 예술인은 “작업을 할 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라며 “반딧불이 공간 덕분에 방해받지 않고 활동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빈집이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팀 박수연 담당자는 “대도시가 아닌 곳은 지역 예술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자리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빈집을 활용한 문화공간이 대중에게 지역 예술인의 작품을 보여주는 장소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지역민에게는 문화예술 활동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빈집이 보통 지역민이 거주하는 주택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덕진(문화학) 박사는 “문화예술을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주위에 접할 기회가 없어 생소하기 때문이다”라며 “익숙한 ‘집’이다 보니 지역민들에게 다른 문화공간보다 접근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지역민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사랑방 기능을 한다. 시민극단‘배우로배우다’ 박성희 대표는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된 지역민들이 이후 사적인 만남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문화프로그램으로 한곳에 모인 지역민들이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빈집이 유동인구가 적고 문화공간이 거의 없는 곳에 위치할 경우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빈집에 예술인이 거주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점차 그곳에 모이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지역 활성화로 이어진다. 금천문화재단 관계자는 “딱딱하고 삭막한 사무실이나 중화요리 식당이 문화공간으로 바뀌면서 주변 환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라고 말했다. 부산 문화재단 관계자는 “비어있던 곳이 문화 활동으로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공간이 된다”라며 “이는 지역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라고 설명했다.

 

감천문화마을 주민이 반딧불이 5호점 예술인의 도움을 받아 문패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오늘(10일)까지 반딧불이 어울마당이 진행됐다. 이는 빈집활용 사업의 일환이며 △액자 꾸미기 △즉흥 동요 만들기 △시낭송회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구성됐다. 이중 <부대신문>이‘문패 만들기’ 활동을 담아봤다.

지난 6일, 감천문화마을의 한 주택.   조용한 바깥 분위기와 달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호탕한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앞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물감과 붓. 이날 반딧불이 5호점에서는 감천문화마을 주민들과 문패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나무 문패 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소와 이름을 적고 꾸미는 식으로 이뤄졌다. “이름을 써본 지가...초등학교 다닐 때인데”. 조금 낯설어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문패 위에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어느새 각자 문패를 만드는데 열중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검정색 하면 좋을 것 같은데...검정색 없나?”. 적극적으로 색을 찾기도 하고 연신 글자를 고쳐가며 문패의 여백을 채워갔다. 주소와 이름을 꾹꾹 눌러쓴 문패에 작가들의 손길이 살짝 더해져 개성 넘치는 문패들이 완성됐다. 처음 방문했다는 송만의 할아버지는 “안 해봤는데 오늘 함 해보니 재밌네”라며 “이 주변에 혼자 사시는 노인들도 많은데 이런 거 자주 하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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