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한문학 석사 18)

조선 중기의 학자인 박상현이 쓴 ‘꽃을 보는법(看花吟)’이라는 한시가 있다.

세상사람 그저 꽃을 보기 좋아할 줄 알지만
꽃이 꽃 되는 이유는 알지 못하네.
모름지기 꽃에서 생의 이치를 보아야하니
그런 뒤에야 꽃을 볼 수 있게 된다오.

이 시는 그의 문집인 우헌집(寓軒集)에 실려 있는 한시로 꽃을 보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갑분시’이지만 이 시와 이를 통해 느낀 점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실 이 시는 과제로 인해서 어쩔 수 없는, 귀찮음이 충만한 감정 안에서 우연찮게 만나게 되었다. 학부 수업 중에 한시와 자신의 인생을 접목해서 발표해야 하는 강의가 있었고 적절한 작품을 찾다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시인데, 소개 받은 상대가 완전 진상인 경우처럼 썩 유쾌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어머니가 ‘진상에게 빠지면 답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이 경우일까. 정말 진상 같던 이 시가 조금씩 괜찮은 시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와 비슷해 보인다는 점에서 분명 콩깍지가 씌였다.

개인적으로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시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8년의 인생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어릴 때 당했던 학교폭력이라던가, 아직까지 떨쳐내지 못한 외모콤플렉스로 인해 겪는 힘든 일이라던가,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쳐서 있었던 대인기피증이라던가, 가난한 집안 사정이라던가, 이러한 일들을 통해 실패로 끝난 자살 시도라던가, 나의 부주의로 인해 졸업이 미뤄져 1년 반을 허송세월을 보낸 일이라던가. 많은 우여곡절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흔들리며 피는 꽃’이 조금은 위로가 돼주었다.

이 두 시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흔들림’이 아닐까 한다. ‘꽃을 보는 법’에서 꽃이 꽃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말해주고 있다. 흔들리며 비바람에 젖어가며 그 ‘흔들림’을 견뎌냈기에 찬란하고 빛나는 꽃을 피워내었다고 전하고 있다.

쇠는 담금질 할수록 단단해지고 사람은 역경을 견뎌낼수록 깊어진다고들 한다. 나 또한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처음에는 왜 나에게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지, 왜 나만 고통 받는지 등 많은 원망으로 세월을 보낸 적도 있으나 결국 그 당시보다 한층 더 깊어지고 나아진 내가 되었다. 결적으로 ‘흔들림’이 나를 좀 더 성장시키는 담금질이었다.

고치 안 나비는 영원히 그 어둡고 갑갑한 곳에 갇혀 있을 것 같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꽃봉오리는 영원히 흔들릴 것만 같다. 그 상황 안에서는 영원히 갇혀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나비는 고치를 뚫고 나와 아름답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비바람에 흔들리던 꽃봉오리는 맑은 하늘 아래에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 영원할 것만 같던 ‘흔들림’을 견뎌내면 결국 찬란하고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가 될 것이다. 

‘꽃을 보는 법’은 말한다. 꽃이 꽃 되는 이유를 알라고, ‘흔들리며 피는 꽃’은 이야기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 찬란하고 빛난다고, 우리가 성공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가까이 보이는 나도 ‘흔들림’을 견뎌냈기에 좀 더 나은 자신이 되었다. 

‘흔들림’은 영원하지 않다. 다만 오래도록 흔들릴 것처럼 보일 뿐이다. 부디 많은 이들이 자신의 ‘흔들림’을 견뎌내고 좀 더 나은 그 무엇인가가 되기를 바라고 응원하며 이 두 시가 그들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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