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빈 광고판을 발견한 순간, 본능적으로 끌려가 흰색 분필을 꺼낸다. 멈추지 않고 과감하게 형상들을 그려낸다. 수정할 수 없기에 실수란 없다. 약 1,000통의 경범죄 위반카드를 받지만, 굴하지 않고 미친 듯이 표현한다. 1982년 길거리에 예술가 키스 해링(Keith Haring)이 등장했다. 

키스 해링의 그림은 낙서와 같이 자유분방하다. 이렇게 일정한 형식 없이 벽에 그리는 기법을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라 부른다. 작가의 신념과 감정이 다수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이나 길거리의 벽에 작품을 그렸다. (1)<무제>(1985)는 키스 해링이 지하철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위의 그림은 돈으로 일궈낸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고 아래는 그것이 결국 탐욕이라는 기괴한 형상을 띄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일상적인 감정이나 신념을 그림에 드러내 대중과 소통한 것이다. 그는 과거에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예술을 고집스레 추구하는 건 자기를 과시하는 허튼 수작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키스 해링의 작품에는 ‘선’이 돋보인다. 자주 그림 외곽을 굵은 선으로 그려내기도 했다. 지하철과 건물 외벽에 작업했던 그는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했다. 속도감 있는 표현에 익숙해져 과감한 선이 그의 그림체가 된 것이다. 작품을 보면 선을 사용한 상형문자나 기하학적인 형태가 나타난다. 독립된 선들을 이어 아이콘화된 사물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형상은 그의 섬세한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예술계에 흔하지 않았던 그림체는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후 유명세를 얻은 그는 다양한 미술 재료를 사용해 화려한 색감이 들어찬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사안들에 대한 시선을 작품에 담았다. △인종차별 반대 △반핵 운동 △동성애자 인권운동 △에이즈 교육 등의 필요성을 그림으로 말한 것이다. 생명체의 전멸 상태를 그린 (2)<무제>(1983) 작품으로 원자력 시대의 위협을 말하며 반핵을 강조했다. 또한 <Ignorance=Fear, Silence=Death>(1989)로 사회에 만연했던 마약 남용을 조심하라는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다. 

키스 해링은 생애 끝자락 즈음, 에이즈 희생자를 줄이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뉴욕의 많은 시민은 에이즈로 고통받았다. 당시 미국을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는 에이즈를 해결하기보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에 키스 해링은 대중을 구제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AIDS>(1985) 작품은 죽은 자를 데려가는 괴물에 무기력한 환자가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사람들의 성적 충동을 억제시키기 위한 메시지를 전하고, 에이즈를 경고한 것이다. ⑶<무제>(1985)를 보면 빨간색과 검은색을 사용해 지옥을 연상시키고, 성교를 하는듯한 사람과 그 아래에서 목숨을 구하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체 중 하나인 밝은 색감 사용을 포기하고, 사회의 모습을 불길한 분위기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는 에이즈나 마약 등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한 노력이었다. 

키스 해링은 엘리트집단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또한 사회적으로 은폐하거나 쉬쉬하던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그림에 드러냈다. 김지영(국민대 미술학) 석사는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작업에 나타나는 사회적 개입에 관한 연구>에서 ‘사회적 편견을 불식시키고 다양한 가치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라며 ‘고급미술의 높은 담을 허물어 모든 사람을 위한 미술을 만들려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이름이 없다.  키스해링은 ‘미술은 그것을 보는 관람자의 상상력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소통이 없다면 그것은 미술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죽음에 다다르기까지 키스 해링은 작품에 이름을 짓지 않으며,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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