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이다. 물론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 힐링 담론 열풍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힐링 담론을 ‘자아에 대한 질적으로 다른 담론’이라고 규정한다. 힐링 담론 자체가 근대성의 분할을 모호하게 만들고 가로질러서 ‘자아를 표현하고 형식화하며 안내하는 주요 코드들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힐링 담론에서 핵심적인 것은 문화를 구성하는 언어와 코드이다. 

공동체주의자처럼 사회참여와 자기 치유를 대립시키거나 푸코처럼 자기 치유도 자기 규율화의 일종이기 때문에 권력에 충실한 자아를 재생산할 뿐이라는 일반적인 비판에 맞서, 일루즈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는 ‘왜 대중은 이것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한다. 편의상 자기계발 담론과 힐링 담론을 구별하긴 하지만, 둘이 명확하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힐링 담론은 자기계발 담론의 일종이다. 말하자면 힐링 담론은 자기계발 담론의 하나로 호명된 것이고,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자기계발 담론 없는 힐링 담론은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기계발 담론과 힐링 담론을 다른 것으로 파악해서 전자는 문제고 후자는 괜찮다는 식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계발 담론의 일종이긴 하지만, 힐링 담론은 자유주의나 시장중심주의에서 강조하는 자기계발의 언어와 다른 언어를 만들어냈다. 일루즈에 따르면, 힐링 담론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스스로 돕는다’는 자조(self-help)의 정신이다. 대체로 19세기 미국의 영성운동을 이런 힐링 담론의 기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지만, 일루즈는 미국의 프로이트 수용 시기를 지목한다. 1909년 프로이트는 미국의 매사추세츠 클라크대학에서 이루어진 강연에서 ‘활력에 넘치고 성공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소망하는 판타지를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다’고 발언했다. 

문제는 이렇게 ‘스스로 돕는다’는 것이 개인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경제문제, 다시 말하면 생산성 이론과 결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성적이었던 기업조직문화가 여성화되면서 감정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된다는 것이 일루즈의 주장인데, 한국의 경우도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변화한 소주 광고가 이를 잘 보여준다. 처음에 소주 광고는 ‘노동주’로서 남성성의 강화를 보여줬다. 그러나 오늘날 소주 광고는 감정의 위로를 앞세워서 여성성을 강조한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힐링 담론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힐링을 강조하는 자기계발 담론의 도입에 따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동자의 감정을 배려하고 애로사항에 관심을 기울여야한다는 경영학 이론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힐링 담론은 이렇게 노동자의 감정을 관리하기 위한 자기계발 담론의 일종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자의 7가지 습관>도 7번째 실천지침으로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도나 명상, 운동과 봉사활동, 고무적인 독서를 통해 몸과 마음, 영혼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쇄신해야 한다’고 제시하지만, 힐링 담론은 이런 ‘근면성실’의 차원을 벗어나는 것이다. 힐링 담론은 오히려 ‘감정의 연약함(the weakness of emotion)’에 대한 배려와 생산성 향상을 연결 짓는 논리이다. 정통적인 경영학에서 감정에 치우친 자아는 연약한 존재로 취급 받는다. 생존경쟁을 위해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부단하게 자기 쇄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기계발과 힐링의 논리는 강철의 단련을 내세웠던 사회주의적 인간형과 닮은꼴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생산력의 부품으로 자신을 갈아 넣기를 주문하는 이 논리는 인간주의를 뿌리부터 폐지시킨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결과적으로 개인의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한계에 봉착해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계를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 일루즈가 말하는 것처럼 힐링 담론이 근대적 자아를 표현하고 형식화하는 것이라면, 이 힐링의 근대성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힐링의 자리에 다른 무엇을 놓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택광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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