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에 학교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전화를 받으면 의례껏 받는 질문이 “방학 중인데도 학교에 나오세요”다. 서로의 사정을 잘 아는 교수들끼리도 이런 인사를 주고받는다. ‘네 바빠서요’, ‘집에서 할 일이 없어서요’, ‘학교가 시원해서요’ 등이 이런 질문에 의례껏 나오는 답이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하다보면 다소 짜증이 난다. 사실 교수들은 방학 중이 더 바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기 중간처럼 시간에 매어있지 않아서 그렇지 교수들의 연구는 대부분 방학 때 완성된다. 학술지도 방학이 끝날 어림에 발간되는 호가 투고량이 가장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

  생각해보면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꼭 학교에 정해진 시간에 와야 하지 않을 뿐이지 요즘 같은 초 경쟁시대에 방학이라고 넋 놓고 노는 학생은 거의 없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실력’은 방학 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기 중에는 내남 할 것 없이 전공 공부에 매달리니까.

  나는 강의 중에 여러 번 방학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데 진정한 대학생은 방학 중에 만들어진다 라고 한 적도 있다. 누구라도 경험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시험을 위해 우겨넣은 지식은 마치 약속한 것처럼 시험이 끝나면 금방 없어진다. 이와 다르게, 재미로 얻은 지식, 읽고 싶어 어렵게 구한 책, 어학도 팝송이나 영화 같은 즐거움을 위해 배울 때는 오래 남아서 무언가 나를 풍요롭게 한다. 대학이 학문을 위한 곳이고, 학문이 생존을 위한 기능이나 실용의 습득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오래 남는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방학)란 대학생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런 지식들은 책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행이나 답사, 각종 봉사활동도 방학 때에나 가능하다. 나는 또 학생들에게 말한다. 방학 중에는 가출이라도 하라고. 집에만 있지 말라고. 가출이라는 말에 놀랐던 학생들은 그 다음에 나오는 여행에는 고개를 끄떡거리다가 이내 표정이 어두워진다. 돈이 없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잘 살펴보면 큰돈이 없어도 해외까지 갈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일정한 시험을 거쳐야 하지만 이런 시험은 대부분 어떤 특정한 성적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열의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경쟁해볼 수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도서관을 권한다. 방학 중의 도서관은 학기 중의 번잡함이 작고(그래서 정말 도서관 같고), 무엇보다도 시원하다. 친구지만 경쟁자이기도 한 도서관의 동도들이 의욕을 돋구어주니 금상천화다. 또 도서관이라고 해서 꼭 암기가 필요한 공부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소설이나 수필을 읽을 수도 있다. 다만 정기성을 가지고 꾸준하게는 나와야 즐거움이든 암기든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의 노두(路頭)에 있는 학생이라면 이런 이야기가 다소 사치스럽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 학생에게는 건강도 챙기면서 하라고 하고 싶다. 더울 때 너무 진을 빼면 찬바람이 불 때 몸이 적응하기 어렵다.

  방학하면 뭔가 공부에서 손을 놓는 휴가를 연상하기 쉽지만, 방학은 말 그대로 ‘넓게 학문하는’ 그런 기간으로 보고 싶다. ‘좁게 해야 하는’ 학기 중에는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는 때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방학은 넓은 학문, 하고 싶은 일, 느슨한 목표에서 무언가를 얻었으면 좋겠다. 내 노력과 자세에 달린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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