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디자인 4)

  27박 28일. 지금 생각해보면 약 한 달간의 긴 꿈을 꾼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지난 3월 달 개강 초 친하게 지내는 후배 녀석이 나에게 같이 국토순례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었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도전해보면 재미있겠다’하는 생각으로 그냥 지원서를 썼다. 꼭 국토순례를 해야겠다는 마음가짐 따윈 없었다. 그렇게 운 좋게 약 4대1의 경쟁률을 뚫고 국토지기 12기로 뽑힌 후에도 내 마음 한편으로는 갈까 말까 언제나 늘 갈등 중에 있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전체모임과 자주 있는 지역모임으로 국토지기 12기들과 점점 더 친해지고 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국토순례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한 달간의 국토대장정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국토대장정의 기대감과 설렘, 기말고사는 별 안중에도 없이 빨리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드디어 방학이 왔고 6월 27일. 드디어 해남 땅 끝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약 740km의 우리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햇볕이 쨍쨍한 하늘 아래 하루에 20~30km씩, 많이 걸을 땐 40km를 걷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초반엔 ‘그냥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마 나 혼자 도전했더라면, 함께하는 이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분명 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함께하는 120여명의 그들이 있었기에 그 힘든 나날들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첫날부터 숙영지에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샤워를 할 수 없었는데, 그래도 첫날 말고는  모두 샤워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 안에 샤워를 하는 것은 처음엔 어려웠다. 그리고 우린 매끼 식사를 우리가 직접 요리했는데 비록 일식일찬이더라도, 때로는 밥이 타기도하고 설익기도 했지만 언제나 밥은 꿀맛이었다. 그리고 중식 때는 일명 ‘빨간밥’ 이라고 그냥 흰 쌀밥에 고추장과 참치, 참기름을 넣고 다 같이 비벼먹었는데 때로는 아침에 카레나 짜장 종류가 나오면 빨간밥 대신 먹기도 했다.


  그렇게 배불리 점심을 먹고 나면 약 한 시간 이상의 점심시간이 남는데 그 때는 대부분의 지기들이 달콤한 낮잠에 취한다. 새벽 일찍, 보통 5시~5시 반쯤 기상해서 더위에 맞서 걸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달콤한 점심시간이 끝나면 또 오후행진으로 이어졌다. 먹고 자고 걷고 먹고 자고 걷고… 이 단순하고 본능에만 충실한 생활이 재미있었다.


  핸드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토순례 한 달간 거의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밖에서 어떤 노래가 유행하고, 어떤 뉴스거리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기계가 없는 생활에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힘들어 여유도 없었지만 그만큼 즐거웠다. 행진 한 달 동안, 내 마음속 한구석에서 늘 자리 잡던 미래의 걱정과 불안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 생활이 끝나지 않길 바랐던 맘이 컸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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