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엽 군과 윤정민 양이 여러 어른과 친지를 모시고 혼례를 올리게 됨을 알려 드립니다. 즐거운 자리에 함께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979년 11월 24일 이색적인 한 결혼식이 열린다. 바로 ‘YWCA 위장결혼식’이다. 유신에서 신군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끝나지 않는 독재를 저지하기 위한 가짜 결혼식이 일어난 것이다. 계엄군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던 당시 민주화를 염원한 이들의 함성이 당일 식장을 가득 메웠다.

1979년, 10·26사태로 유신정권은 종식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민주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상 계엄령이 발동해 국민의 자유가 제약되고, 최규하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이 유신헌법에 따라 간선제로 후임 대통령을 선출할 것을 발표한다. 결국 또 다른 독재정권의 출현을 두고 볼 수 없던 많은 민주 투사가 다시금 행동에 나선다. 윤보선, 함석헌 등 재야인사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직선제 시행 △유신헌법 폐지 △양심수 석방 등을 주장하며 정부에 대항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계엄령 선포로 직접적인 시위는 경찰과 군부를 자극할 뿐이었고, 이에 그들은 다른 형태의 시위 방안을 고안한다. 결혼식을 가장한 시위를 생각한 것이다.

서울 YWCA 강당에서 민주청년협의회의 홍성엽과 가상 인물 윤정민의 결혼식이 열렸다. 당시 민주화운동 단체인 △국민연합 △해직교수협의회 △민주청년협의회의 회원 500여 명이 현장에 모였고, 신랑 입장과 동시에 이들은 △유신체제 청산 △문민정부 수립 △간선제 반대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에 가만히 있을 정부가 아니었다. 시위가 절정에 달할 때쯤, 계엄군들이 식장에 들이닥쳤다. 현장은 곧 아수라장이 됐고 대다수의 참석자가 연행됐다. 이 중 일부가 식장을 빠져나와 거리 시위를 진행했지만 이내 체포됐다. 이날 연행자는 모두 140명에 달하며, 14명이 구속되고 67명이 즉결심판에 넘겨진다. 연행된 이들은 모두 수일간 참혹한 구타와 고문까지 당한다.

YWCA 위장결혼식 사건은 당시 기존 유신 세력들의 폭압에 맞선 민주열사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비록 신군부의 등장을 막진 못했으나 폭력적인 당대 정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고 계엄철폐 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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