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여전히 캠퍼스에 자주 보이는 모습이 있다. 팀프로젝트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추측컨대, 이렇게 팀 프로젝트가 많은 이유는 과제의 본래 목적과 더불어 공동작업의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능력을 기르고 공동체의식을 갖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많은 학생들이 팀프로젝트 때문에 아우성인 것도 사실이다. 공정하지도 않으며, 공동체 의식과 인간관계에 대한 배움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줄세우기와 상대평가에 길들여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공동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이 되어버렸는지 짐작하게 된다.

2018년 한국의 대학생들은 경쟁과 상대평가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다. 초,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들은 본인의 노력과 성취를 넘어 타인의 성패에 의해 가늠되고 평가받아왔다. 그런 그들에게 과제를 통해 공동체의 소중함을 배우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요구인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결국은 혼자서 과제를 책임지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말한다. 어차피 팀프로젝트가 끝나면 연락처 삭제와 차단으로 이어지는 일회용 인간관계 아닌가. 

원래 대학은 큰 가르침을 이루는 곳이다. 인간정신과 시민의식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예의를 배우는 곳이다. 그러니 팀 프로젝트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과제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평가를 도구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학생들을 내몰면서 공동 작업을 하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상대평가 체제에서 학생들은 스스로의 성취와 성실함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쟁자들이 혹시 나보다 더 낫지 않은지를 살피며 눈치를 봐야 한다. 경쟁자들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은폐술은 필수다. 물론 경쟁을 통해서 전체적인 역량이 상승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쟁을 포기하거나, 어차피 ‘바닥을 깔아주는’ 이들이 있으니 적당히 남들보다 나을 정도만 하는 적당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어차피 문은 좁고 ‘노오력’은 배신하게 되어 있으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만족할 뿐, 굳이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는 체념과 소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최근 국내의 유수대학들은 상대평가 제도를 폐지하고 있다. 올해 초 서울대는 스펙용 학점경쟁이 대학교육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보고 글쓰기, 외국어, 수학, 과학 등 기초과목부터 절대평가로 전환하였다. 성균관대도 상대평가 원칙을 수정하겠다고 밝혔으며, 이화여대도 학부 교과목 성적을 교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평가하는 ‘교수자율평가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도 얼마 전부터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하면 상대평가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연세대도 내년부터 상대평가 원칙을 폐지하고 평가방식을 과목에 따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쯤되면 우리도 이제 일방적 줄세우기로부터 벗어나, 공동체와 대학교육의 사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대학 신입생을 뽑으면서, 그리고 졸업생들을 사회에 내보내면서 인성과 사회성, 그리고 공동체의식을 이른바 핵심 역량으로 이야기한다. 공동체 따위는 안중에 없는 각자도생 최적형 인간들을 길러내면서 말이다. 이제는 그만 상대평가의 망령에서 벗어나자. 강요된 성실은 미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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