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민(불어불문학 15)

수첩 속 빼곡한 일정들. 난 매일 내가 할 일들을 정리해둔다. 그리고 이행 여부에 따라 O 또는 X 표기도 한다. 남들은 이런 날 보면 계획적이라고들 호평한다. 규칙적이고 성실한 삶의 태도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꼼꼼한 성격은 날 단단히 옭매고 있다. 어느 순간, 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계획에 집착하는 내가 됐다. 불성실하게 하루를 보냈다며, 적어놓은 일들을 마치지 못한 날엔 스스로를 자책한다. 열심히 살자는 마음가짐은 분명 좋으나, 이 마음이 날 자꾸 죄인으로 만들었다. 결국 내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가 됐다.

이런 내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신문이다. 강박에 시달리는 일상에서 신문은 내게 낙이었다. 지면에서 그려지는 세상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때문에 나는 기자를 꿈꿨다. 이러한 꿈을 갖고 <부대신문>의 문을 두드린 난,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그저 좋아 도전했고, 이에 즐겁게 임할 마음뿐이었다. 처음 취재해보고 기사를 써본 수습 기간.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강박에 시달리는 일상으로부터 탈피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의 강박관념은 이곳까지 드리웠다. 초반이기에 잘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건만, 미숙한 내 모습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목표 취재량을 못 채우거나 기사를 여러 번 퇴고할 경우엔 심리적 부담감도 엄청났다. 부족함을 매 순간 절감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나아가 점차 취재량이 늘고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니, 결국 내 초반의 마음가짐은 소멸했다. 분명 꿈을 찾아왔고 행복 하고자 시작했건만. 더한 강박관념에 휩싸인 내 모습만 발견할 수 있었다.

난 어떠했는가. 지난 생활을 돌이켜보면, 놀랄 만큼 치열했다. 좋은 기획을 가져오는 것, 완벽히 취재하는 것 등에만 몰두하는 나였다. 또한 부족한 점만 생각하고 내 장점엔 관심조차 없었다. 학업과 일과에 압박받아왔듯, 기자로서 발전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갇혀 지냈다. 결국 시간이 흘러 <부대신문>의 일이 힘들다고만 여기게 됐고, 몸과 마음은 갈수록 지쳐갔다.

낙수를 곧 앞두고 재차 고민해봤다. <부대신문>을 계속해도 될까. 기자를 할 자격이 과연 내게 있는가. 힘들었던 시간, 물론 많았다. 맘 편히 잠든 날도 손에 꼽힌다. 하지만 돌이켜볼수록 즐겁고 보람찼던 순간들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처음으로 기획안이 통과됐던 순간, 보도 후 취재원으로부터 받아본 감사 문자 등, 결코 소중한 경험들이 적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지냈구나, 이제야 깨닫는다.

결국 다시 마음먹는다. 계속 나아가보자고. 물론 완전히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테다. 24년간 살아온 방식이니깐. 다만 시선을 조금 돌려 압박을 덜어보고자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답게, 내 꿈답게 임해 보고자 한다. 이젠 나를 옥죄이던 강박에 유연히 대처하고, 매 순간을 만끽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이러한 앞날을 꿈꾸며, 정기자의 길로 한 발짝 내딛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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