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SNS에는 연일 멋진 단풍 사진이 올라옵니다. 기록적인 더위에 힘겨운 날을 지낸 게 엊그제 같은데 가을이 성큼 다가왔지요. 그런데 겨울이 바로 다가옵니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한반도에 계절의 경계선이 움직입니다. 유독 긴 여름과 겨울에 된더위와 한파가 더해집니다. 올겨울이 유독 추울 거라고 하지요. 제트기류의 이상으로 인한 한파와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이 지구온난화 영향이라고 합니다.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온실가스가 지목됩니다. 이제 겨울이 오면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할 테고 악순환은 반복되지요. 물고 물리는 끈을 어딘가에서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탄소 배출 제한과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에서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그런데 다른 세계의 일인 양 우리는 여전히 풍족하게 사용하고 나 하나 줄인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문득 인류의 과학기술은 이토록 진보했는데 ‘왜 좋은 공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아예 이산화탄소를 없애지 못하는 걸까요. 이 간단한 물질을 쉽게 분해할 수 있다면 마음껏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 애초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연료였다면 모든 게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인류는 왜 화석연료를 사용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이산화탄소에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는 탄소가 산소와 만나 연소반응 후 생성된 물질이고 이때 방출된 에너지를 인류가 사용하는 겁니다. 두 원소가 반응해서 새로운 생성물을 만드는 밑바탕에는 법칙이 있지요. 모든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변환합니다. 마치 뜨거운 물이 식는 것처럼 자발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이동합니다. 모든 물질은 에너지가 있고 원자 하나에도 에너지가 있지요. 두 원소가 떨어져 있으면 전체 에너지 합은 두 원소가 가진 각각의 에너지를 더한 값일 겁니다. 그런데 두 원소가 가까워지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원자가 서로 떨어져 있을 때보다 전체 에너지 합이 낮아지게 되지요. 원자가 따로 떨어진 상태보다 자발적으로 결합해 분자로 있는 것이 안정하다는 겁니다. 이 두 조건의 에너지 차이가 분자의 결합에너지이고 이 차이만큼 에너지가 방출되며 열에너지로 사용됩니다. 

이산화탄소는 분자 중에 평균 이상의 높은 결합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결합에너지가 높다는 것은 큰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의미입니다. 거꾸로 이산화탄소를 다시 산소와 탄소로 분리하기 위해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의미도 되지요. 결국, 한 번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는 분리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의 하나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 합니다. 만약 이산화탄소의 결합에너지가 낮았다면 감축이 아니라 분해하는 데에 더 집중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결합에너지가 낮았다면 애초에 에너지를 얻는 연료로 사용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결국 인류는 화석연료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화석연료의 고갈을 화두로 사용량을 줄이려 했습니다. 화석연료는 더는 지구 위에서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희생하며 화석연료라는 소중한 선물을 인류에게 주었지요. 석탄은 석탄기 때에 거대하게 자란 양치식물의 무덤이었고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아 썩지 않고 만들어졌습니다. 석유는 동식물의 유기체가 대륙판마저 갈라놓을 정도의 어떤 충격으로 매몰됐고 혐기성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된 것입니다. 이후에 산소와 이산화탄소는 지구 생태계에 에너지 흐름으로 들어왔고, 지구는 마치 생명체인 유기체처럼 두 원소에 의지하며 움직였지요. 그런데 인류가 자연의 선물인 탄소화합물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그 균형을 흩뜨려 놓은 겁니다. 무분별한 사용은 고갈이 문제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협합니다. 지구는 이상기후로 경고를 하고 있지요. 이 경고를 무시하고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대기에 보낸다면 자연은 다음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선물을 위해 인류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어쩌면 우리의 미미한 노력은 그 희생의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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