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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회 부대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biophoton
  • 박유현 (일어일문학 17)
  • 승인 2018.11.18 04:22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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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의 복숭아를, 가을이 되어서야 떠올렸다. 10월 중순 즈음 어머니께 복숭아를 사달라고 조르면, ‘올해는 이미 늦었단다. 다음 해가 오면, 그때 한창 물오른 복숭아를 사주마.’라 하시며, 어린 나를 달래셨다. 그러면,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랐던 마음이 한순간에 가라앉으며, 가슴속에 무거운 무언가가 자리 잡은 듯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윗니 아랫니 맞물려가며 과육을 깨부술 때의 아삭함으로, 입속 텁텁함을 털어주며, 알맞게 흘러나오는 과즙과, 이를 맞이하러 나오는 군침의 조화를 목 너머로 삼킬 때의 청량감으로 불결을 씻어주는 백도. 시월의 시원한 하늘아래서 청량함까지 갖출 수 있다면, 1년간 묵혀놓은 나의 부정들을 씻어 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그렇지 않았다. 나는 생명의 빛을 흡수할 수 없었다. 이를 깨닫기에 나는 너무 어렸으며, 깨닫는데 또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청량감만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1
우유급식은 정말 싫다. 하얗고 탁한 액체를 삼킬 때면, 목에서 이상한 거부감이 든다. 거부감이 든 상태에서, 뱉어버릴지, 삼켜버릴지 고민하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꼴깍하고 소리를 내며 한 모금씩 차례로 뱃속으로 내보낸다. 먹지 못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이런 거부감이 드는 까닭을 모르겠다. 탁한 색이 싫은 것은 아니다. 나는 미술수업이 끝난 뒤, 여러 물감의 색이 섞여 있는 물통 속 물의 탁한 색감을 좋아한다. 우유의 비린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피자에 들어간 치즈는 우유보다 더 진한 향이 나지만, 늘어난 치즈를 혀로 감아 입속으로 넣으며 맛있게 잘 먹는다. 내가 그린 그림 속의 집과 같은 모양을 한 종이팩에 갇혀있는 액체는, 싫어하지 않는 요소들의 집합이었지만, 그 조합에는 혐오에 가까울 정도의 거부감을 느꼈으며, 이내는 매일 아침 우유당번이 1층에서 우유통을 가져오는 모습마저도 꺼려지게 되었다. 모든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저번 주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분명 내가 우유를 싫어하는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그럴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손에 닿은 우유곽은 딱딱한 촉감과 함께 나에게 냉기를 전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를 내쫓으며, 책상에 나른하게 엎드렸다. 차가운 우유곽을 손에 쥐고, 지금 먹을지, 아니면 하교 길에 버려버릴지 고민했다. 아이들이 종종 그런 장난을 한다. 집으로 가는 길, 바닥을 향해 우유곽을 세게 집어 던지면, 우유곽이 터지면서, 새카만 아스팔트 도로 위에 새하얀 색채를 더하였다. 여럿이 모여, 몇 개 인가 도로위에 탁한 액채로 그림을 그려둔 그 광경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거면 종이 위에다 그려야지.’ 우유는 나중에 마시기로 하였다. 생각을 멈추고, 몸을 책상에 밀착했다. 선생님께서 오셨고, 수업을 시작하셨다.

오늘은 자아에 대해서 배웠다. 다른 부분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장이 있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며, 자신만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 문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듯 했다. 심지어는, 나를 비꼬기 까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특별하지 않아. 너는 그저 수많은 아이 중 한명일 뿐이야. 네가 지금 하고 있을 생각, 느끼고 있을 감정은, 모두 앞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야. 너는 그저 그를 거쳐지나갈 뿐이야.’라며 말이다. 책상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책 속 내용을 반박하고 싶었다. 허리를 숙이고, 책상에 얼굴을 밀착시켜 누웠다. 아직 마시지 않은 우유에 손을 뻗었다. 아침처럼 차갑진 않았지만, 아직 냉기를 품고 있었다. 냉기는 손끝을 통해, 팔을 통해, 머리로 전해졌다. 이렇게 감각을 느끼는 방식도, 결국은 누군가를 따라할 뿐인 건가. 우유곽을 손에 쥐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손과 팔과 머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선을 따라 올라온 냉기는, 내 머릿속으로 흘러 와 번뜩이게 만들었다.
 “그래, 이거야!”
 “왜 그래?”
옆자리 친구K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너 지금 시원하지 않지?”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시원하지 않냐고!”
 “그러니까, 무슨 소리야, 아직 9월 초야.”
 “바로 그거야!”
세기적 발명을 해낸 과학자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K야, 이 우유곽을 한번 손에 쥐어봐.”
 “자, 잡았어. 왜?”
 “어때, 시원해?”
 “응.”
 “그래? 난 시원하지 않은데.”
K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K의 행동이, 표정이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누군가가 생각해내지도 못한 분야를 개척한 기분이다. 즉, 내가 느낀 시원함은 나만이 느낀 것이다. K가 쥐고 있는 우유곽의 차가움을, 나는 느끼지 못한다. 내가 쥐고 있을 때 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고,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 분명 내가 하는 생각들과, 느끼는 감정들 또한, 나에게만 귀속된 것이다. 그러기에 스스로의 특별함을 뽐내도 될 터이다. 책의 내용에 반박하기를 성공한 성취감 속에, 이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옳음에 틀림없다고. 나는 스스로 특별했다.
  
#2 
사람의 행동의 연관성은, 어떤 매개를 통해 이어지는 것일까. 예컨대, A가 책상에서 연필을 들어 올렸을 때, 연필을 가지고 낙서를 할지, 글을 쓸지, 던질지, 버릴지, 부러뜨려 버릴지, 무엇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일까. 여기서 관여할 ‘매개’야 말로 스스로를 특별하게 하는 것일 텐데, 이시절의 어린, 어리석은 아이는, 연필을 들어 올렸다는 우월감에 심취하여 더욱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버렸다. 자만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되었다.
  
-2
때렸다. 사람을 처음으로 때려보았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만약 선생님들이 봤으면, 폭력의 행사라느니, 싸움이라느니 잔소리를 해댔을 거다. 싸움은 아니었다. 나와 H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장난이라는 점을 서로가 알고 있다. 간단한 실험을 할 뿐이다. 저번에 생각했던 ‘차가움’의 연장선으로 말이다.
 “어때?”
내가 말했다.
 “아픈걸. 근데 뭘 실험 하는 거야?”
H의 물음에, 싱긋 웃어보였다.
 “비밀이야! 왜나면, 이건 내가 알아낸 발견이거든! 함부로 알려주기엔 아깝잖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언제까지나 나만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해주신 우주얘기는 교과서 속에 있었고, 몰랐던 친구들이나 한번 들었던 나나, 결국은 수업을 통해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교를 다니다 보면 누구든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젠가 H가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게 되었냐며, 나를 추켜세워 줄 일을 생각하면, 그만 우쭐해져버린다.
 “그럼, 나도 해볼래.”
H가 한 말에, 그만 움찔했다.
 “뭐?”
 “그러니까, 너의 발견을 나도 알고 싶거든. 한번만 때려보면 안돼?”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막상 맞으려니, 뭔가 불편했다.
 “그래. 나도 때렸는데 뭘.”
걸리는 마음을 뒤로한 채, H에게 맞아보기로 했다. 팔에 H의 주먹이 달려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팔이 아파왔다.
 “어때? 알겠어?”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어서는 안 된다. 나만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 좀더, 이런 우쭐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나의 일과는 실험을 하기 위한 장난으로 시작했다. 학교에 오면, 주먹으로 H에게 새빨간 흔적을 남겨두었다. 그럴 때마다, 요전의 복잡한 기분이 강하게 떠올랐으며, 계속해서 때릴수록, 찹찹한 기분이 들었다.

날이 지나고, 때리는 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어째선지 친구들은 나를 중심으로 서있었다. ‘아, 역시 내가 맞았어. 나는 특별하고 소중해.’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나와 H를 둘러싸며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시험을 지켜보고 있는 거다. H나, 그 친구들 S와 U에 대해서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K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제외한 색은 모두 흑백이었으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A이거나 B이거나 C였다. 역시 나는 스스로 특별했다. 그렇게 2년을 지냈다. 

#3
폭력의 습관화. 2년간 그 속에서 아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더러운 타성에 젖어 반복되는 폭력에 물들어 갈 때 즈음, 아이가 얻은 것이라곤 단조로운 폭력에 대한 싫증뿐이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몸이 좋지 않았기에, 주변 친구들이 자라갈 수록 자신이 직접적으로 가하는 폭력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아이는 폭력에 흥미를 잃었다. 스스로가 특별해질 수 없는 분야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이는 다른 수단을 물색 했다. 자신이 우월해질 수 있고, 자신만이 특별해질 수 있는 수단을, 아이는 공부를 했다. 이전에도 부진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기엔  가장 빠른 수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을 공부하고 시험을 봐도 항상 위에 있는 사람이 있었다. 노력이 극에 달하고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위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이는 공부에도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그저 도망쳐 다녔다. 무서웠다. 자신이 그곳에 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존재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증명의 방식으로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추구했으며, 자신이 타자의 위에 설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면 두려움을 가지고 돌아서 버렸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는 시원하고 깨끗한 태도도,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선구자적 태도도 아니었다. 가슴 한 켠에 추함을 안고 끝없이 돌아다닐 뿐이었다. 자신의 꼴사나움을 숨기기 위해 누구보다 바른 걸음으로, 빠른 걸음으로.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향할 곳을 잃어버렸을 때, 아이는 멈춰 섰다. 자리에 앉아 모든 날이 지루하다 생각했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도 앞으로 머무를 날도 무미건조한 나날이라 생각했다.

-3
3월은 봄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1년은 4계절로 나누어져 있고, 3~5월 까지는 봄이라고. 봄 하면, 학교 울타리에 노랗게 핀 개나리와 함께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어쩌면 책에 그렇게 써져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오늘은 3월 2일 개학식, 학교로 가는 산길은 여전히 춥다.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는 것도 더 이상 신선한 일은 아니다. 예년과 마찬가지의 지루한 개학식. 울려 퍼지는 국민의례. 경례할 때의 멜로디도, 고개를 숙인 채, 다들 엄숙하게 바닥을 보는 묵념의 멜로디도, 이미 오래전에 다 외웠다. 교장선생님이 단상 앞에 서, 선생님들 소개를 하신다. 이전에 있던 선생님 몇몇 분들이 다른 학교로 가시고 새로운 선생님들이 오셨다. 각자 당신이 맡은 반과 자기소개를 하신다. 내 학년을 맡으신 분은 앞머리가 약간 까진, 특이한 옷을 입고 있는 백발의 어르신이었다.
 “좀 무서워 보인다.”
뒤에서 A가 건들며 그렇게 말했다.
 “몇 살 일까?”
존대를 생략한 채, B가 말했다.
 “글쎄다. 작년보다 잔소리만 적었으면 좋겠는데.”
A와B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과거에 선생님에게 혼났던 일을 회상하며, 작게 욕지거리를 했다.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꽤나 성실하다. 학교도 제일 먼저 오고, 수업 중에 큰소리로 떠들거나 아이들과 장난치지도 않는다. 아닌가? 장난은 몇 번 쳤던 거 같다. 아무튼, 공부도 꽤 잘한다고 자신한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해봐도 나보다 잘하는 아이가 있었다. C라는 아이인데, 항상 무언가로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 아이의 나를 향하는 웃음은, 어디선가 비웃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웃음. C를 빼면 그 다음은 나였다. 내 입으로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나는 착실하고 성실하며, 학교 성적까지 괜찮다는 것이다. 청소시간에 친구들과 노느라 청소를 빼먹었을 때도, 질타와 매질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엄한 듯 훈계를 하실 때, 마치 개학식의 묵념 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이제 되었다며 그만 가보라 하셨다. 나처럼 성실하게 보이기만 하면 저 아이들처럼 직접적으로 미움 받을 일은 없을 텐데. 교장선생님 옆에 서서 학생 쪽을 보며, 일렬로 서있는 수명의 선생이란 직함의 어른들은, 내게 있어 그런 사람들이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시작되고 다리가 저려왔다. 매년 반복되는 이런 행사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일까. 학교가 빨리 마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지루하다. 교장선생님께서 백발의 어르신을 앞으로 부르더니 학생들에게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이 분은 XX대 교육학과 석사를 나오셨으며, 여러 활동을 하시다가 저희학교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귀한 분이시니 아무쪼록 많은걸 배워 가시기 바랍니다.”
엄하게 생기고 특이한 옷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 그 분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개학식이 끝나고, 새로운 교실로 들어갔다. 매년 위치만 바뀔 뿐인 똑같은 풍경의 교실. 들어오는 나를 보고 A가 책상에 움추려 누웠다. 매일 하던 실험은 관두었다. 재미가 없어졌다. A는 항상 그렇게 나를 피했다. 나와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눈을 피했고, 하교 길에 만나면, 걸음걸이를 늦춰 나를 먼저 보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친구들과 함께 불량식품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을 때, 마침 들어가려는 나를 보면, 도망치듯 서둘러 나갔다.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아이들을 피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주변의 아이들은 다들 덩치가 큰 데에 비해, 나는 체격이 왜소하다. 어릴 때부터 몸이 많이 안 좋았다고 한다. 키가 160가까이 되는 아이도 있었지만, 나는 130도 안되었다. 그 아이는 종종 30cm자를 가지고 와, 내 머리 위에 세워두고 자신의 키와 비교해 보며 장난을 쳤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나쁜 기분도 아니었기에, 그런 장난에는 가벼운 미소와 욕지거리로 회답을 하였다.

A가 누워있는 책상을 지나쳐, 나의 자리에 앉았다. 책상에 엎드려 팔을 뻗고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시원한 냉기. 언젠가 처음으로 이 냉기를 의식했을 때, A는 나를 피해 다니지는 않았는데. 언제부터 A는 나를 피하게 되었을까? 그날 이후로 A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특별히 달라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뭔가 바꿔보고 싶진 않다. 내 주변에는 여전히 B나 C같은 친한 친구들이 있다. 냉기는 변하지 않았다. B와 C, 교실의 풍경도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A이다. 평소와 같은 날이다.

아침에 강당에서 보았던 백발의 어르신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잠옷과 비슷하게 생긴 의복 옆구리에 출석부를 끼고, 천천히, 무겁게 단상을 향하셨다. 내리치듯, 출석부를 책상에 놓으셨다. 소곤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뒤를 돌아서 분필을 잡아, 칠판에 알 수 없는 한자를 그리셨다.

 “제 이름은 R입니다. 오늘부터 1년간 여러분의 담임선생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과하게 소개하신 감이 있어 부끄럽지만, 늦은 나이에 이렇게 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R….’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좀 특이하지요? 개량한복 이라는 옷입니다. 평소에 입고 다닐 수 있게 편하게 디자인 한 한복이지요.”
우리를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흰머리가 많이 나 있지만, 그렇게 늙지는 않았습니다. 5X살이죠.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나이가 많아 멀어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소개가 끝난 후, 자기소개를 했다. 시골학교라 학생 수가 적어, 전 학년은 각각 1반뿐 이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지만, 새로 온 선생님을 위해 의자에서 일어서, 몇 년 간 질리도록 본 얼굴을 다시 모두에게 보여주며, 귀 속에 박혀있는 서로의 이름을 한 번 더 들려주었다. 간단한 의례. 매년 오늘 하는 일. 개학식과 같은 의식. 이 또한 변한 것은 없다. 변한 것은 담임선생님 정도다. 평소와 같은 날이다.

#4
아이는 책에 하는 낙서를 매우 좋아했다. 도화지와는 다른 매끄러운 재질에 획을 그으면, 연필에 닿고 있는 손가락 끝에서부터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왔으며 책 위에는 깔끔한 선이 나타났다. 부드러움 아래 탄생한 여러 선들이 서로 얽혀 형태를 이루어 낼 때, 목적도 의미도 없는 낙서가 완성되었다. 아이는 그런 틀을 만들어 내는 행위가 맘에 들었다. 예술이었다. 아이에게는 미술이었다. 이내는 자신의 손에 닿는 도처마다 흔적을 남기고 다녔다. 복도 벽에 먹으로 그림을 그려 크게 혼났던 적도 있었다. ‘그림은 도화지에 그려라.’ 아이는 그림에 흥미를 가졌다. 방과 후에 미술부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는 데에 시간을 할애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집에 들어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아이 앞에는 선을 그려나가는 법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만났다. 단조로운 일상에 싫증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할 때, 비로소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빛을 알아차렸다. 아이는 반짝임을 잡기 위해 다시 일어났다. 매일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손으로는 연필과 붓을 놀리고, 입을 놀리며 이야기를 했다. 가르침 받은 것은 도화지 위에 선을 긋는 방법 뿐 만이 아니었다.

-4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나는 어느 정도에 있는 것일까. 친구들과 아파트 단지에서 놀고 있자면, 이따금 동네 형이 과자를 사주곤 한다. 그 형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형의 누나는 대학생이다. 나의 아버지나 판서를 하고 계신 선생님은 어른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한참 어린 아이이다. 나는 지금 어느 시점에 서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형이 되고, 누나가 되고, 선생님이 되면, 그렇게 커서 어른이 되는 걸까. 책상 위에 장래희망 조사표가 놓여있다. 언제쯤 어떻게 되어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까. 내일 점심 메뉴도 모르는데 앞으로 몇 년을 예측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는 지금부터 내 미래를 정하고 그것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걸까. 그러기에 나는 너무 어리다.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모르고, 미래의 나를 모른다 해도, 그래도, 지루하지 않은 일이 있고 그 일을 좋아한다면, 그를 직업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단순하게 화가라 적어 제출했다.

  R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학교가 끝나고 미술실로 오라고 하신다. 곧바로 A의 집에서 게임을 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귀찮게 되었다. 선생님이 나를 부를 때 좋은 일은 그다지 없는 거 같다. 항상 어딘가의 심부름이나 대회의 권유 등 하나같이 귀찮은 일들 뿐 이었다. 나는 그냥 놀고 싶은데 말이다. 그렇다고, 어차피 내일 마주치기에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미술실로 불렀다는 것이다. 보통은 교무실로 부를 텐데. 미술실에서 옮겨야 하거나 정리해야 하는 물건이 있는 것일까? 미술실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갔다. 해는 이미 기울어 졌다. 산 뒤로 숨어버리기 까지 1시간 남짓 남았을 거다. 미술실 앞에 서, 문을 두 번 두드린다. “들어오렴.”
점잖고 낮게 깔려있는 목소리. 귀찮은 표정을 얼굴에서 지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정중하게 보이도록 자세를 고친다.
 “부르셨어요?”
 “그래. 일단 이리 와서 앉으렴. 뭐 좀 마시겠니?”
 “괜찮아요. 무슨 일 때문에 부르셨어요?”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신다. 믹스커피를 두 개 찢어, 한 컵에 넣는다. 커피는 어떤 맛일까? 커피를 드시는 어머니께 여쭤보면, 항상 아직 먹을 나이가 아니라고만 답하셨다. 선생님은 나보고 먹으라는 양, 접시에 과자를 담아 내 앞에 두셨다. 내 앞에 앉으며 작게 신음을 하시고 말을 이으셨다.
 “꿈이 화가라 했지?”
 “정확히 무엇을 해야겠다고 정해놓은 일이 없어서 그냥 재미있는 일을 적었어요.”
 “그림에 흥미가 있나 보구나.”
 “네. 그래도 잘 그리진 못해요. 책에 낙서 하는 게 고작인걸요.”
 “그거야 다들 처음에는 그러지.”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걸까하고 접시의 과자를 하나 입속으로 가져왔다.
 “사실은 내가 화가를 하다 왔거든.”
 ‘확실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복장과 희끗한 머리칼에서 나오는 신비한 분위기는 예술가라 불리기에 적합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나에게 그림을 가르치러 부르신 것일까?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다. 나는 확실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매일 방과 후 이런 식으로 늦어져서야 A의 집에서 같이 게임하고 놀 수 없으니까.
 “나는 너에게 강제로 그림을 가르칠 생각은 없단다. 예술은 그런 게 아니거든.”
나의 생각을 읽은 듯 안심시켜주는 말을 하셨다.
 “그저, 시간이 될 때 이곳에 와서 그림을 배우겠다면, 내가 가르쳐 주겠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꼭 그것만은 아니어도 된단다. 하고 싶은 얘기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여기로 오거라. 나는 항상 여기에 있으니까.”
시킬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학생을 부르는 선생님은 처음이다. 게다가 오고 싶을 때 와서 그림을 배워도 된다니. 화가가 꿈인 학생을 만나 기쁘신 걸까. 이따금 마음이 내킬 때 가겠다고 답을 하고 미술실을 나왔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할 때 골라서 할 수 있다니. 마음이 가벼워 졌다. 미술실에 자주 들를지도 모르겠다.

 -5
매미는 언제쯤 울까. 산의 나무는 이미 청량한 녹읍으로 치장했는데, 푸른 하늘 아래 스스로의 시원시원한 목청을 뽐내며 울어대는 매미는 6월이 되어도 아직 땅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사과와 꽃병이 창밖의 빛을 받으며 책상위에 놓여있다. 정물화를 그리고 있다. 매미는 한여름 2주를 살기위해 십 몇 년을 땅속에 묻혀 잠만 잔다고 한다. 고작 2주 안에 자신이 할 일을 다 하고 떠나야한다. 불쌍하다. 스케치 하는 손을 멈추지 않고 R선생님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글쎄….”
캔버스를 향하는 눈과 붓을 놀리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낮게 깔린 목소리만 나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가엽게 여겨야 할 일일까.”
갤판에 새로운 물감을 짜내셨다. 붓에 물을 먹이고, 새로운 조화를 만드셨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말이다 사실 매미의 생과 크게 다르진 않단다. 요새는 수명이 많이 늘어 80세까지 산다고 한다만, 그 80년의 삶 중 자신이 가장 빛날 때는 과연 몇 년이나 될까. 자신에겐 가장 빛나 보일 때조차, 타인이 보기엔 부싯돌의 불꽃처럼 금방 스러질 스파크로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 네가 보기에 매미는 굉장히 아련하고 슬픈 생을 짊어진 운명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를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단다. 각자에겐 각자의 색이 있고, 각자의 빛이 있는 법이거든. 매미는 그 상태로 아름다운 것이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한 모금 하고는, 나의 옆으로 오신다.
 “스케치를 할 때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손위에 손을 포개어 내 손을 이끈다. 울퉁불퉁한 손.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다들 사는 방식은 비슷해 보이지. 매미가 땅 속에서 시간을 보내듯, 우리도 우리의 안에서 밖에 나가기 위해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야.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거란다. 색을 담을 형태를 만들고, 빛을 발하지. 그 색이 어떤 색이든, 어떤 형태에 담겨져 있든, 빛이 얼마나 멀리까지 닿던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란다. 자신이 자신으로써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니. 자, 이렇게 하면 된단다.”
숙였던 허리를 피신다. 손은 떠나고 연필은 나에게 넘어왔다.
 “좋아하는 과일 있니?”
 “복숭아요.”
 “왜 좋아하지?”
 “아삭하고 시큼하고. 달콤하기도 하죠. 한 입 깨물었을 때 흘러나오는 과즙이 시원하기도 하고요.”
 “저기 사과를 보렴. 6월의 사과는 저렇게 푸른빛을 띠고 있지. 하지만 9월의 사과는 어떨까?”
책상위의 사과를 집어 물로 씻어내신다. 입으로 가져가 한 입 크게 배어먹고선 나를 향해 팔을 뻗어 건네며 먹으라는 양 턱을 까딱이셨다. 연필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받아들어 한입 배어 문다. 아삭함. 과육에서 나온 시큼한 과즙이 입안을 채운다. 청량감.
 “어때? 맛있니?”
 “네. 입안이 시원해져서 좋아요.”
 “6월의 사과는 시큼한 맛. 9월이 되면 그보다 단맛이 강해지겠지. 넘어가거나 너무 이르면…. 글쎄다,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구나. 중요한 건, 맘에 드는 사람도 있고 안 드는 사람도 있다는 거지. 누군가의 맘에 들 빛을 띨 이유도, 억지로 맘에 들려 노력할 필요도 없어. 그래도 누가 그 빛을 좋아해 준다면, 그거야 말로 기쁜 일 아니겠니. 네가 그 사과를 좋아하듯 말이다. 난 신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
선생님은 혀를 내밀고 얼굴을 찌푸렸다. 커피를 다시 한 모금 하시고 창밖을 보며 말을 이으셨다.
 “그러한 빛들이 어울려 한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란다. 각각의 형태와 색조들이 어우러져 우리의 큰 캔버스에 어떤 빛을 그려낼지,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지 않니?”
선생님의 표현은 너무 어렵다. 전부 삼켜 이해하기 힘들다. 범위도 넓다. 나에게 보였던 것은 항상 하나 뿐 이었는데. 그래도, 그렇구나.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구나. 나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구나. 이 계절에 매미들은 하나같이 땅 속에서 잠들어 있겠지. 내가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과 다를 게 없구나. 입을 열고, 오래전에 A에게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 따뜻함을 느낄 수 있나요?”
멀뚱히 나를 쳐다보신다.
 “아, 이 컵 말하는 거니? 그래, 따뜻하다 못해 조금 뜨겁구나.”
 “저는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에요.”
처음으로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았다. 이젠 알 거 같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건너뛰었는지. 나는 어리석은 빛의 어린 꼬맹이였다.

 #5
나른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배부된 우유는 강압적이었다. 우유가 가둬진 우유곽은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는 자신과 같았다. 바닥에 던져 터뜨렸을 때, 가진 모든 불평을 검은 아스팔트 위로 펼쳐놓은 광경은 장관이었다. 손으로부터 차가움이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때, 아이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되었다. 더러운 타성에 젖어 우월함을 느끼고 있을 때, 차가움은 몇 번이고 아이를 깨우쳐 주려 하였다. 시간이 지나 계절이 오면, 바람으로 얼굴을 간지렀으며, 뜨거운 햇빛에 방향을 잃으면 계절의 청량한 생명으로 아이의 귀를 건드렸다.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일상을 지루하다 느끼며 새로운 우월함을 찾고 있을 때조차, 아이를 놓지 않고 시원함을 전해 주었다. 무감각하게 모든 것을 무시해 버린 것은 아이였다. 눈을 감았다. A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웃고 떠들며 같이 놀았을 텐데.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빛은 여전히 같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했다. 이미 지나온 길이었다. 언젠가 주저앉았었던 흔적을 발견했다. 발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워버렸다. 계속해서 나아갔다. 아이는 뒤를 향하고 있었다.

 -6
매미가 모여 울어대던 숲에 가면, 귀에 들리던 노래는 당연히 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게 비슷하게 들린다고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했다. 자신의 세월을 지내어 결실을 맺은 나무의 과실을 먹을 때도, 입속으로 들어가면 똑같다고 맛을 음미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시원하면 좋았었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각자가 각자의 빛을 발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곳이다. 나는 학교의 아이 중 특이한 생각을 했던 한명의 아이일 뿐이다. 내가 했던 생각이 다른 아이의 빛을 없애서는 안 된다. 나는 스스로 어리석었다.

져가는 햇빛에 따라 창틀의 그림자도 비스듬히 누웠다. 창가에 세워둔 이젤들에게 따뜻한 이불을 덮어줬다. 주홍빛의 하늘은 여전히 나른했다. 이제 곧 어두워지겠지.
 “내가.”
여느 때와 같이 커피를 끓이시며 말을 꺼내셨다.
 “선생이라는 직함을 내새워 너희를 화해시킬 순 있지.”
여느 때와 같이 내가 먹을 과자를 담으신다.
 “하지만, 그건 너도 원하지 않지?”
네모난 커피과자.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불려 가면 항상 손에 쥐어주던 과자이다. 
그런 걸 화해라고 할 수 있을까.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이 왔다. 많은 고민을 했고 많은 질문을 했다. 이전에 느꼈던 답답함은 나의 우둔한 생각과 그를 묵살하고 넘어간 데에 있다. 자신에 심취해 모든 걸 흘겨 넘겼던 우행들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히 내가 저지른 일이며, 아이들에게 입혔던 상처를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도 없다. 상기시켜본다. 그 아이의 이름은 H. 키는 나보다 약간 크고 머리가 작다. 안경을 썼으며 평소에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른 아침의 산길을 지난다. 전봇대를 타고 있는 청설모도 있다. 낮과는 다르게 시원한 아침공기에 뻐꾸기는 시원시원 노래를 부른다. 학교에는 H가 우유를 가져다 놓고 있었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이 다가간다. 머뭇거린다. 팔을 들어 올려 손을 뻗는다. 가볍게, 아이의 어깨를 건드린다.
 “H야….”
아이가 돌아본다. 흠칫. 형이 나를 놀래 키며 놀 때, 자주 그런 표정을 지었었지. 심장이 빠르게 뛴다. 살면서 이렇게 떨렸던 적은 없었다. 무섭고 두려운 것 같다. 추악하긴 했으나 자신의 일부인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떨리는 입을 열고 대화를 시작한다. 이른 여름의 아침에 매미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사과와 용서는 뭘까요.”
과자를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으스러진 가루가 접시에 흘러내린다. 이젤에는 예의 정물화가 올려 져 있다. 선생님은 연필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신다. 폈던 허리를 편하게 하신다.
 “누군가는 용서를 한없이 신성한 행위로 보기도 하고, 사람이 사는 세상이 행복해 지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라고도 하고, 과거를 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라고도 하지. 사람마다 답이 다르단다.”
 옆에 있는 컵에 손을 가져가신다. 비어있는 컵에 커피포트의 물을 채우시고 믹스커피를 두개 찢어 넣으신다.
 “너의 생각은 어떻니.”
 “모르겠어요.”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으신다. 팅. 팅. 컵의 표면을 부딪칠 때마다 맑은 소리를 울린다.
 “하지만, 용서를 받지 못했다는 건 제 사과가 부족해서 이지 않나 싶어요.”
커피를 마시는 선생님의 입가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컵을 내려놓으시고, 나에게 다가오신다. 정물화에 명암을 넣고 있었다.
 “사물이 가장 어두운 데는 바닥과 닿아있는 데가 아니란다. 바닥에서 반사된 빛이 약간 있거든. 그러니까 약간 위를 이렇게….”
울퉁불퉁한 손. 따뜻한 물의 온도가 전해졌다. 틀이 잡힌 스케치에는 서투른 명암으로 채워져 있었다. 선생님의 연필이 닿고, 가벼운 터치를 계속하셨다. 위에 덧칠했을 뿐인데 어둡고 밝은 부분이 훨씬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연필을 놓으신다.
 “Y야, 너는 앞으로 많은 문제를 맞닥뜨리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거야. 발이 묶여 더 이상 나가지 못할 일이 있겠지. 하지만 과거 구애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어선 안 된단다. 너는 과거의 모든 일을 없던 일로 해버리지 마렴. 모든 것들을 담아서 나아가다 보면,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도, 하게 될 고민에도, 너만의 답이 보이게 될 거야.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을 바라고 있을게.”

시간은 흘러 계절을 가르키게 되었다. 어두워진 미술실은 불을 켜지 않고선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너무 늦었네. 이제 그만 가자꾸나. 태워다주마.”
캔버스와 이젤을 정리하고 교실 문을 잠군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게와 소리가 다르지만, 함께 어두운 복도를 울리고 있었다.

-7
선생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벼운 붓 터치를 이용해 주황색과 갈색이 섞여있는 벽돌의 채색 법을 가르치셨다. 늦가을 갯벌의 갈대밭을 걸으며, 댐 공사로 사라져버린 당신의 고향이야기를 해주셨다. 겨울 산에 올라 눈으로 얇게 쌓인 등산길을 스케치하며 어린 시절 추억이야기를 하셨다. 여전히 쌀쌀한 바람이 이어오는 봄이 오면 그리 멀지않은 공원에 추운 줄 모르고 벌써부터 피려는 꽃을 그리러 갔다. 계절은 돌고 돌아 또 여름이 왔다. 처음으로 방학숙제가 없는 여름방학. 나는 전학을 간다.

그 후로 H와 인사정도는 하게 되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런 아이들의 시선에는 애써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적어도 인사할 때만큼은 나와 H밖에 없었다. 이사를 가기 전에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도 한번 마주쳤다. 가벼운 인사와 찰나의 농지거리를 끝으로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다. R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께선 작별 선물로 파스텔과 물감, 본인이 쓰던 브랜드의 붓과 스케치북을 주셨다. 그림을 계속 그릴 생각은 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친구라는 아이들과도 작별인사를 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모여서 놀 뿐이었지만, 헤어질 때의 인사가 달랐다. 다들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아쉬워하는 기색이 얼굴에 묻어났다. 나를 신경 써주는 것에 감사한다. 짐도 다 쌌고 내일이면 출발한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그 속에 듬성듬성 포진하여 바람 따라 흐르고 있다. 매미는 아직 울지 않는다. 맑은 하늘 아래 나는 스스로 서있다.

많은 시원함을 찾아다닐 것이다. 여름에는 매미의 목청에 감탄하고 가을에는 뻥 뚫린 시원하늘을 바라볼 거다. 겨울에는 내리는 눈을 손으로 잡을 것이며 봄이 되어선, 온 몸으로 바람을 맞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여름이 올 때는, 때를 놓치지 않고 과실의 청량함을 삼킬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담아 끌고 갈 것이다. 그 모든 시원함을 이 몸에 안고 앞으로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나아간다.

 

박유현 (일어일문학 17)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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