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소연 (경영학 16)

JTBC 드라마 <라이프>에는 극중 장애를 딛고 정형외과 전문의가 된 예선우(이규형 분)에게 형 예진우(이동욱 분)가 ‘널 보며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어. 넌 그 사람들한텐 희망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선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 내 삶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나는 그냥 사는 거야’

이 장면에서 정말 많은 장애인 시청자들이 공감했다고 한다. 사실 당연한 건데, 타인에게 용기나 희망이기 위해 존재하는 인생이란 없다. 예선우가 각종 불평등한 상황에 부딪히며 의사가 되었다 해도 그 후 인생은 또 다른 문제일 뿐, 평생 좌절이나 포기하지 않고 영웅이 되라는 법은 없다. 듣거나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든 역경을 최선을 다해 극복하고 대단해질 의무가 있는 듯 바라보는 눈은 불공평하다. 무조건적으로 나아가라 미는 것은 앞길을 막는 것만큼이나 폭력적인 차별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18살의 나이에 암 투병을 한 경험이 있다. 입시를 앞두고 수술과 치료의 연속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부산대학교에 합격했고, 치료도 잘 끝냈다. 그러나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역시 암은 아무것도 아니고 노력하면 못 할 일이 없다며, 인간승리라는 말과 함께 영웅이라는 칭찬을 보내왔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가진 지인 분들은 일명 ‘정신 교육’을 부탁해오기도 하고, 대화의 마무리로는 본인 기준에 더 큰 병을 가진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그에 비하면 나 또한 훨씬 나은 상황이니 더 열심히 살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방사선치료로 폐 기능이 떨어져 오르막 학교를 위급상황용 흡인기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등의 일상 속 여러 문제를, 또 그 외에도 전공수업이 힘들다는 등의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문제도 겪고 있지만,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려웠다. 혹여 한다 해도 ‘그래도 너는 암도 이겨냈는데 이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너를 보고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많아’라는 말이 뒤따랐을 뿐이다. 암을 견뎌냈다고 다른 어려움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궤적이 누군가의 희망이기 위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게 아닌데.

살아있는 영웅이나 날개 없는 천사 스토리에 유독 환호하는 한국 정서의 영향인지,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한 개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엔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심심하면 보이는 게 ‘시각장애를 딛고 박사가 된 장애인’ 같은 기사 헤드라인이고, 댓글엔 ‘제가 부끄러워집니다’와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장애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저 사람보다는 나은 형편이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지’하는 자기위안식 동기부여에 소비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

똑같은 일을 해도 장애인이면 더 과하게 칭찬받고 다른 이의 귀감이 되는 사회는, 실은 장애를 열등한 존재로 보고 차별하는 사회다. 우리 이제 조금은 더 구조적이고 발전적인 고민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교수나 의사가 된 장애인을 찾기 이전에, ‘내가 다니는 이 대학에 휠체어로 강단을 오를 수 있게 설계된 강의실은 몇 개나 될까?’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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