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화학) 교수

아침 4시 기차를 타기 위해서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는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하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속도로 기차역을 향해서 달린다. 가끔 주황색 신호는 물론이요, 빨간색 신호도 적당히 무시를 한다. 다시 한번 안전 벨트가 제대로 메어져 있는지 확인해 본다. 역에 도착하여 신형 고속 열차인 SRT에 올라탔다. 빨리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이 기차의 속도를 다시 한번 알려준다. 참 빠르다!

최근에 한국에 와서 한국의 엄청난 속도감을 몸소 느끼고 있다. 미국 시골 마을에 수년을 살다 다시 마주한 조국 한국이 알려주는 속도감은 내 어린 시절을 보낸 나라임에도 아직 어색하다. 무슨 차이일까? (물론 분명 미국의 대도시에서도 엄청난 속도전이 일어나고 있을 터이다) 단순히 시골이어서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왠지 모르게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2018년에도 한국에는 노벨 과학상이 없었습니다’라는 뉴스는 이제 어색하지도 않고 심지어 지겨워지기까지 한다. 아니 사실 과학자로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 여기에도 분명 우리 사회를 그동안 이끌어 왔던 ‘속도’ 개념으로 노벨 과학상에 접근하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한 지인은 ‘한국의 과학자들이 너무 게으른 게 아니냐?’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 한 과학자로서 더 새로운 것을 탐색하지 않는 게으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주변 동료 과학자들을 보면 매우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200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에 있는 Eric Cornell 교수는 스탠포드 대학 재학 중 이미 학부 과정에서 물리학에 월등한 자질을 인정받아, 누구도 의심할 여지 없이 물리학으로 커리어를 완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분은 물리학이 자신의 길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며, 다른 전공 공부를 해 보았음은 물론이요, 돌연 대만으로 떠나 중국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한 후에 자신은 물리학이 아닌 다른 것에는 재능이 없다며, 다시 물리학으로 돌아와 준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좋은 성과를 내어 노벨상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2014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또 다른 괴짜가 한 명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 있는 Eric Betzig 교수이다. 이 분은 벨 연구소에서 130년간 물리학으로 절대로 깰 수 없는 영역이라고 알려진 회절한계를 극복하는 연구를 수행하여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 분이 연구를 계속해서 수행할 것이라 했지만,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돌연 아버지가 하는 기계 공장으로 직장을 옮긴다. 그 후 수 년이 지나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며, 그간 알던 친구를 꾀어 그 친구 집 거실에 회절한계를 더욱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설치하였다. 이 일로 이 분은 2014년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된다. 

두 사람 다 들은 바로는 일 중독이다. 하지만 이 분들은 엄청나게 빠르게 달려가는 시스템에 자신의 몸을 실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을 돌아보며 속도를 내야 할 때, 그리고 여유를 가질 때를 잘 조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론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단 잠시 걷는 것도 필요한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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