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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제 역할 못 한 정치
임예인 <ㅍㅍㅅㅅ> 편집진

2018년은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때문이다.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11월 1일에는 대법원이 종교적인 양심이 입영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는 짧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된 최초의 기록은 무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에서만 여호와의 증인 신자 38명이 병역과 신사참배를 거부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이 중 5명은 옥사했다. 해방 이후에도 암울한 시기는 이어졌다. 특히 1961년 쿠데타로 군부 독재가 들어서면서 처벌이 더욱 강경해졌다. 징역을 산 병역거부자를 다시 징병하여 처벌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화두에 오른 것은 2000년대를 넘겨서다. 그때까지 이 문제는 일부 종교의 문제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노상 전도나 신문 사회면 등으로나 보던 그런 종교 말이다. 그래서 화두에 오른 뒤에도 여론은 좋지 않았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엄중한 안보적 위협, 병역 자원의 유지 필요, 상투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논리가 동원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짧게 보면 이십 년, 길게 보면 팔십 년 동안 이 문제를 묵혀왔다. 그동안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앰네스티,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꾸준히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을 우리 정부에 요구했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쉬운 일이었던 듯 치부할 수는 없다. 국제앰네스티의 권고는 정확히는 이런 것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모두를 사면하고 배상할 것. 대체 복무는 순수한 민간 복무로, 그 기간이 군 복무 기간을 초과하지 않을 것. 병역거부자들이 군 복무를 수행하는 사람과 동등한 혜택을 받도록 보장할 것. 이 권고를 정말 우리 사회가 혼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양심적 병역거부에 반대하는 어떤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을 두고 그럼 군 복무는 비양심이냐고 반문한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양심을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아니다. 개인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 있듯, 개인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어떤가.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이란 대체로 ‘살인 무기를 들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납세 등 다른 의무와 달리 병역을 유독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이유 또한 병역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군 복무를 전쟁이라는 범죄에 부역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두 양심은 많은 각도에서 충돌하며, 사회가 두 가지 양심을 동시에 긍정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공론화와 숙의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이건 정치의 영역이자 입법부의 몫이어야 했다. 인권과 양심의 자유에서부터 시작해, 대체 복무의 형태에 대한 각론까지 갑론을박하며 균형점을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현 병영문화의 문제와 개선점에 이르기까지 더 풍성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정치인의 행보가 사회의 흐름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겐 세상을 진보시킬 책무가 있다. 빠르지 않더라도, 느리고 꾸준하게.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용납될 순 없는 것이다. 결국 모든 걸 해결한 것은 사법부의 엘리트들이었다. 한 번 칼을 내려쳐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잘라내 버렸다. 결과에 환영하면서도 일말의 찝찝함이 남는 것이 그 까닭일 것이다. 사법부의 엘리트들이 사회의 진보를 앞장서 추동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로 인해 사회 갈등이 촉발되고 공론과 숙의가 위축되진 않을까. 사법부 구성이 보혁의 땅따먹기 싸움터로 변해버리진 않을까. 사법부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그러나 반대로 사회를 퇴행시키는 결정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다시 생각건대, 이건 입법부가 먼저 해야 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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