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썩은 토마토(Rotten Tomatoes)’ 지수라는 게 영화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기준이 된지는 오래다. 미국의 어느 영화 전문 사이트는 공신력 있는 영화 칼럼들을 한데 모으고 그 평들을 바탕으로 일명 ‘썩토’ 지수를 매긴다. 숫자가 크면 클수록 그건 보장할만한 작품이라는 것.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썩토 지수는 무려 91%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사상 최초로 아시아계 배우로만 주요 배역을 캐스팅했다. 싱가포르 재벌 3세 남주와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대학교수가 된 이민자 중국인 여주가 사랑의 결실을 맺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토리다. ‘아시아인들의 로코’라는 모험적인 시도가 미국 주류 시장에서 먹히기 위해선 아무래도 이야기는 전형적이고 쉬워야 한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올 여름 3주간 미국 흥행 1위를 차지했으며, 10년 동안 가장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가 되었다. 대단한 성공이다. <나우 유 씨 2>나 <지 아이 조 2>처럼 그간 몇 프로 부족한 블록버스터나 찍어왔던 중국계 할리우드 감독 존 추의 한 단계 도약이며, 아시안 배우 콘스탄스 우와 헨리 골딩의 스타 탄생이고, 양자경, 켄 정 같은 중견 아시안 배우의 할리우드 내 확실한 위치 설정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각종 기록을 남기고 있으며 재밌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유럽이나 일본에서 개봉할 때는 ‘아시안’을 살짝 떼어버리고 ‘크레이지 리치’를 제목으로 달고 걸린다는 소문은 기분을 씁쓸하게 하겠다. 아시아인 주연인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유럽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도 화교가 주연인 영화를 꺼려한다는 걸, BTS가 몰고 온 전 세계 열풍과 비교하여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모든 중심이 해체되는 시대에 전 세계 BTS 신드롬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개미지옥 같은 유튜브를 헤치고 다니면서 “그렇지, 우리 아이들이 역시 우월해”라고 댓글 지원을 하고 있는 요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내용이 못내 궁금해졌다. 각종 흥미진진한 기록과 뉴스를 몰고 온 영화의 뚜껑이 2주전 한국에서도 열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흥행은 저조하다.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거 뭐임, 이건 우덜이 제일 잘하는 거잖아?”를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외치고 있었다. 전형적인 막장 아침드라마 같은 플롯과 캐릭터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최연소 뉴욕대 경제학 교수인 중국계 미국인 레이첼은 남자친구 닉을 따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닉의 친구 결혼식에 간다. 그곳에 머물면서 닉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레이첼은 닉이 싱가포르 최대 부동산 재벌의 후손임을 알게 되고, 닉의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남자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가난한 집안 출신에 밝고 명랑한 캔디형 여주, 잘 생기고 젠틀한 안소니 형 재벌 3세 남주, 고부간의 갈등, 거기에 출생의 비밀까지. 김치 싸대기만 없을 뿐,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소재다. 말로만 듣던 중화권 재벌들의 스펙터클하기까지 한 화려한 놀이문화를 구경하는 맛은 <위대한 개츠비>와 <물랭루주>를 능가할 정도지만 이면에 깔린 스토리는 전형적이다 못해 진부하다. 총명한 여주가 이 위기를 견뎌내고 사랑을 쫓을지, 혹은 모든 것을 털고 독립적 정체성을 추구해나갈지가 관건인데, 답은 어느 정도 뻔하다. 

초반 비를 쫄딱 맞은 중국계 영 가족이 런던 최고의 5성급 호텔에 들어설 때, 예약이 아니면 방을 줄 수 없고 그나마 방도 없으니 차이나타운으로 가보라던 거만한 백인 지배인에 맞서 보란 듯이 부를 과시하는 모습은 통쾌하였으나, 카타르시스는 도입부에서 이미 끝나버렸다. 이 영화에 수많은 미국 백인들이 열광했다는 점을 곱씹어 보며, 사랑의 좌절과 성취를 개인의 선택으로 놓던 방식에서 공동체와 가족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새로움일까, 라는 답을 생각해봤지만 흡족하지는 않다. 어쩌면 ‘돈이 좋고 기왕이면 사람도 좋았으면’ 하는 내세우고 싶지 않은 은밀한 욕망, 일명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를 아시안 얼굴들을 내세워 대리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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