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녀>에서 킬러인 숙희(김옥빈 분)
영화 <미옥>에서 범죄조직 보스인 현정 (김혜수 분)

여성감독과 여성주연의 영화 <미쓰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동시에 최근 ‘여성영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여성영화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여성의 시선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남성 중심구조인 영화계의 고질적 병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감독에 대한 선입견과 부족한 젠더의식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손꼽히는 여성 이야기
 
국내 영화계에서 여성영화의 입지는 열악하다. 영상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작년까지 여성감독이 만든 한국 상업영화는 연평균 5편 뿐이며, 1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를 낸 여성감독은 0명에서 2명에 불과하다. 여성주연 영화 또한 연평균 4.5편에 그친다. 한국 상업영화가 한해 약 200편 개봉한다는 점을 비춰보면, 여성영화의 수는 매우 적다.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11월 초를 기준으로 올해 국내 상업영화를 제작한 여성감독 수는 단 3명, 전체의 약 1.5%를 넘지 못한다. 여성 캐릭터가 주체인 상업영화로도 <마녀>와 <허스토리> 두 작품뿐이다.

두꺼운 영화계 유리천장
 
영화·문화계에는 남성 중심구조가 견고하다. △유명 영화감독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인사 △영화사 임원진 등 영화·문화계의 핵심 인물들은 대게 남성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공감하고 자신들을 긍정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영화들을 중심으로 제작 및 투자한다. 김선아(단국대 연극영화학) 교수는 “누구나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영화를 판단한다”라며 “따라서 대부분이 남성인 투자결정권자들은 여성영화를 야박하게 평가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감독의 능력에 대한 편견이 크다. 이 때문에 여성감독은 데뷔 자체가 힘들뿐더러 그 명맥을 이어가기 어렵다. 영상진흥위원회는 <소수자 영화정책 연구>에서 ‘영화산업 내에서 결정권을 가진 직위에 여성은 거의 포진해 있지 않다’며 ‘(여성은) 리더십이 부족하며 체력이 약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여성영화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이전보다 여성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했다. △<악녀> 120만 관객 △<마녀> 320만 관객 △<아가씨> 430만 관객 등 주체적인 여성상을 내세워 성공한 작품이지만, 알고 보면 이 영화들의 감독은 모두 남성이다. 즉 여성영화가 증가했다고 해서 그 여건이 충분히 개선됐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여전히 남성감독과 남성주연이 함께한 영화가 개봉되는 일은 통상적이지만 여성감독과 여성주연의 작품은 제작조차 쉽게 되지 못한다.

실제로 영화감독뿐 아니라 영화계 종사자 전반에서 여성의 비중은 작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의 상업영화 중 △감독 4.3~9.8% △제작자 17.5~35.4% △작가 18.1~31.4% △촬영 1.5~4.8%만이 여성 스태프였고, 전체 남녀성비는 95:5에 달했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독립·저예산 영화 부문도 남녀성비가 88:12였다. 유지나(동국대 영화영상학) 교수는 “몇십 년간 영화 관련 학과 재학생의 남녀비율은 각각 약 50%로 비슷했으나, 영화계 현장에선 성비 불균형 문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남성의 시각으로 탄생하고 평가된다

여성감독의 부족은 여성영화의 부재로 이어진다. 주로 여성감독이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여성영화는 그 수가 적을뿐더러 소재 면에서 제한되는 상황이다. 주로 △모성애 △공포물 △범죄피해로 다뤄지는 반면 여성 주연의 누아르 작품이나 SF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김선아 교수는 “우리 영화에서 생동감 있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는 찾기 힘들지만, 모성을 가진 여성과 범죄피해를 겪는 여성은 흔하게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나 범죄피해자 등 영화 산업 전반에 여성의 이미지는 획일적이라 다양한 장르로 그려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여성영화 자체가 경쟁력이 없다는 선입견 탓에 더욱 극복하기 힘들다. 여성의 이야기와 시선이 담긴 영화는 흥행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큰 것이다. 대게 여성영화라 하면 △독립영화의 한 장르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 △약자 중심의 줄거리를 연상시킨다. 이와 동시에 범죄나 액션 등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서사는 여성영화가 다루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이는 결국 여성영화가 자극성 및 오락성이 부족해 대중성이 없다는 식으로 치부된다. 김선아 교수는 “여성영화가 상업성이 낮다는 편견은 영화계에 남성 중심적 시각이 만연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며 “이는 여성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부적절한 의견”이라고 말했다.

영화계, 여풍(女風) 불려면
  
여성영화가 발전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먼저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벡델 테스트는 영화 산업에서 여성 비중을 평가하기 위해 고안된 척도로 해외에선 이미 널리 이용된다.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둘 이상 등장하는가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가 △대화 내용이 남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 여성의 존재와 활약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돼 여성영화의 현황을 보여준다. 유지나 교수는 “벡델 테스트를 적극 도입하면 여성영화가 부족한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 더욱 여실히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할당제’도 도입돼야 한다. 스웨덴과 영국 등에선 제작 현장의 여성 비율이 일정 이상 될 때, 제작비 일부를 정부가 지원한다. 고질적인 영화계의 여성차별 문제에 국가가 적극 나선 것이다. 

더불어 여성영화에 대한 대중 인식이 제고돼야 한다. 영화는 수요자인 관객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대중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영화계는 계속 남성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유지나 교수는 “영화 산업은 관객 중심으로 돌아간다”라며 “대중이 여성영화를 원할 때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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