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환자에게 필요한 의료기관이지만 열악한 환경 탓에 고충을 겪고 있다. 이미 공론장에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개선은 더디다. 권역외상센터가 중증외상환자들에게 제 역할을 다하려면 어떤 환경이 조성돼야 할까.

누군가에겐 절실하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환자에게 최적화된 의료기관이다. 중증외상환자는 낙상이나 교통사고 등 외부요인으로 신체에 심각한 상해를 입은 환자다. 작년 우리나라에서는 약 7만 5천 명이 중증외상을 입었다. 권역외상센터에서는 365일 매시간 중증외상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즉시 응급치료를 시행한다. 정부는 2012년부터 권역외상센터를 시도별로 1개소씩 지정하고 있다. 환자 수요가 많다면 추가 지정도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2개 센터가 개소해 있으며 부산광역시에는 부산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가 있다.

중증외상환자에게 권역외상센터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증외상환자라도 적절한 시간 안에 치료받는다면 생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연돼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중증외상으로 사망한 환자 중에 예방이 가능했던 환자는 30.5%(2015년 기준)다. 권역외상센터는 이보다 낮은 21.4%다. 이러한 사실은 권역외상센터가 중증외상환자의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데에 역량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늦춰지는 환자의 ‘골든타임’

병원에서 닥터헬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헬기가 환자를 수송하고자 출동해도 이·착륙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자를 이송하는 데 쓰이는 닥터헬기가 착륙할 수 없는 상황이 빈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2015년부터 지난 8월까지 닥터헬기 이·착륙이 중단된 사례가 80건 있었다고 발표했다. 중단된 이유는 △주차장 만차(13.8%) △행사 진행(10%) △제설 미실시(7.5%)였다. 뿐만 아니라 헬기 착륙장이 부족해 헬기가 환자에게 접근하는 게 제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헬기 착륙장 90%가량은 △선착장 △운동장 △고속도로 휴게소로 사용되고 있어 헬기 착륙이 원활하지 않다. 닥터 헬기의 경우 야간에 운행이 제한되고 기상 상황에 따라 출동하지 못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로 인해 중증외상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닥터헬기는 병원에서 운영하는 헬기”라며 “그렇다 보니 다른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헬기보다 제약이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송단계에서 제도적인 문제로 중증외상환자가 권역외상센터까지 도착하지 못 하는 일도 일어난다.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구급대원은 이송지침에 따라 환자에게 맞는 병원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이송 도중에 환자가 사망하면 구급대원이 법적 문제에 휘말리기 때문에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한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이 2017년에 발표한 자료에서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된 중증외상환자는 전체 중에 6.5%에 불과했다. 때문에 이송된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할 수 없어 환자를 권역외상센터로 전원하기도 한다. 정부는 올해 권역외상센터 중증외상환자 중에 타 의료기관에서 인계한 환자가 53%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경우 중증외상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못해 생명에 치명적이다. 부산대학병원 권역외상센터 조현민 센터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이송 중에 환자가 잘못되면 구급대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현실”이라며 “사소한 지연도 중증외상환자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환자를 살리려는 꿈이 현실의 벽에 막히다

인력 부족도 권역외상센터가 역량을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권역외상센터는 매시간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고 응급 상황을 빈번히 경험하기에 업무 강도가 높다. 이로 인해 의료인들이 권역외상센터에 근무하기를 꺼려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외상센터 중환자실 전담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27.6%로 보건복지부가 올해 발표한 간호사 평균 이직률 12.4%보다 월등히 높다. 특히 권역외상센터는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해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더욱 요구된다. 의료진의 기피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상황과 직결될 수 있다. 지난달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아주대학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센터장은 ‘전국에 있는 권역외상센터의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며 ‘외국과 비교해도 의료진 비율이 훨씬 낮다’고 지적했다.

병원의 현실적인 경영 방식도 권역외상센터의 실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어 필수로 투입해야 하는 장비가 많다. 이에 외상센터를 설립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지난 3월 정부는 권역외상센터 평균 설치비용을 파악한 결과 평균 141억 원(국비 80억 원, 자부담 61억 원)이 소요된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권역외상센터는 365일 24시간 대기가 필요한 진료 구조이고 이용하는 환자 수도 일반 병동보다 적다. 이는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적자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병원 경영진이 권역외상센터에 투자하기를 주저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조현민 센터장은 “국민의 안전망을 위해 권역외상센터가 필요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꺼리는 게 사실”이라며 “병원 경영진은 수입이 많은 부분에 투자하려 하기에 권역외상센터는 후순위로 밀린다”라고 밝혔다.

아득한 해결, 더 나은 현실을 만들 수 있나

권역외상센터가 겪고 있는 어려운 현실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다양한 원인이 결부돼 있어 단편적인 대안만으로는 권역외상센터가 역량을 다하도록 돕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하고자 헬기 운영을 돕는 방안이 있다. 다른 공공기관이 협조해 닥터헬기가 이·착륙을 원활히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119 구급대와 경찰 등이 주민과 차량을 통제하고 장애물을 제거해 인계점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는 개선책으로 인계점을 추가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헬기 조종 인력을 확충하고 착륙장에 야간 등화시설을 확보하여 닥터헬기를 야간에도 시범 운행하겠다는 방안도 마련했다.

중증외상환자가 권역외상센터로 원활히 이송되도록 이송 단계에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할 때 이송 지침에 따라 소신껏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예다. 조현민 센터장은 “구급대원이 이송지침에 따를 수 있도록 법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라며 “권역외상센터에서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구급대원이 가진 능력을 실제 상황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라고 전했다.

권역외상센터가 겪고 있는 인력 문제에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권역외상센터는 응급의료를 전담하고 있어, 단기적인 방편으로 의료진의 수를 늘려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 권역외상센터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가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응급의료에 특화된 외상팀을 꾸려야 한다.

병원 평가방식에 권역외상센터와 관련한 항목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다. 병원이 권역외상센터 운영을 시장 논리로만 판단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병원 평가에 중증외상환자 치료와 관련한 항목을 마련해 해당 항목에서 우수한 점수를 얻은 병원에 혜택을 줄 수 있다. 이로써 구조상 수익 창출에 취약한 권역외상센터가 국민 안전에 장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조현민 센터장은 “누구든지 수익이 많고 힘들지 않은 일만 한다면 권역외상센터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라며 “병원 평가 방식을 개선해 병원 경영진이 권역외상센터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권역외상센터의 환경을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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