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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마음 속 들끓던 자유를 외치다
  • 배현정 기자
  • 승인 2018.10.14 04:53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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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부산 시민들의 거센 일렁임. '부마민주항쟁'. 연극 <거룩한 양복>은 약 30여년이 흘러도 이를 기억하는 주인공 최정호를 그리고 있다. 그를 통해 어떤 것들을 보여주려는 걸까.g

시민들이 갈망한 자유

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끈 이는 순박한 국민이었다. 불합리한 대우와 낮은 임금에도 하루하루 밥 한 끼를 위해 열심히 일한 노동자와 소시민들 말이다. 이런 현실을 18년 동안 견딘 이들은 결국 쌓여 있던 울분을 터뜨렸다. 

“우리의 소원은 자유”. 동요 <우리의 소원>의 가사를 바꿔 목 놓아 부른다. 18년 간 독재를 자행한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거룩한 양복>의 주인공 최정호는 면접을 보러가던 중 이들을 마주한다. 거센 파도를 만들어 나아가는 시민들의 모습에 마치 약속이라고 한 듯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그 시절을 살던 사람은 모두 ‘울분’이라는 감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시위하는 노동자와 학생들은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잡혀갔다. 고문실에서 밧줄에 매달리고 물고문을 당하며 매질을 견딘다. <거룩한 양복>은 이들 중 2명을 조명한다. 한 대학생이 “제가 형님을 방화범으로 만들었어요”라고 말하자, 한 노동자는 “그게 와 동생 탓이고, 데모하다 잡혀온 사람들 누구도 잘못한 사람 없다”라고 답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범죄자로 치부한 정부의 행태에 어처구니가 없어 웃을 뿐이다.

부마민주항쟁은 민중들이 민주화를 이루고자 처음으로 일으킨 시위다. 거세게 저항하고 울분을 토하는 민중의 모습에 정부는  비상식적인 고문을 행했다. <거룩한 양복>은 두 사람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 장면에 신이 나는 음악을 넣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라는 걸 부각하려 했다. <거룩한 양복> 김동민 연출가는 “연극에서 고문 받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당대의 상황은 더 참담했다”라며 “그런 참담한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어 연극에도 코미디 같은 음악을 넣었다”라고 말했다. 

항쟁이 남긴 의미를 찾아

부마민주항쟁은 시민들에게 민주의식을 깨우치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거룩한 양복>은 박정희가 10.26사태로 암살당했을 당시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한 고등학생이 “우리 할매가 대통령 죽었다고 대성통곡해서 나도 엄청 울었다”라고 말하자, “야!너거 독재자가 죽었는데 울긴 와 우는데, 잘 죽은 거다”라고 친구가 외친다. 그는 부마민주항쟁을 통해 얻은 민주의식에 따라 생각한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박정희가 없으면 세상이 멈출 것만 같던 사람들과 독재 정치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이 동시에 드러났다.

연극에서 주인공의 ‘양복’에는 부마민주항쟁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부마항쟁 당시 주인공 최정호는 함께 투쟁했던 공장 노동자에게 양복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다. 그 시절 양복은 서로가 갈망하고 도달하고 싶었던 상징적인 물건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최정호는 그 양복을 입지 않은 채 보관하고 있다. 부마항쟁 시절의 사람들을 계속 기억하고 그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끝내 최정호는 그 양복을 불태워 버린다.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통째로 줄려고. <거룩한 양복> 김지숙 작가는 “이름만 남는 운동으로 부마항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주인공 최정호처럼 계속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연극은 <부마항쟁 진상규명·보상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기도 했다. 진상규명위는 부마민주항쟁 참가자들에게 보상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항쟁에 참여한 증거를 요구했다. 최정호한테도 마찬가지였다. “내 기억 속에 있다. 너희들이 믿지 못할 뿐이야”라고 최정호는 외치지만, 진상규명위는 증인과 증거가 있어야 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한다. 이 장면은 연극에서만 풀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김지숙 작가는 “진상규명위 때문에 부마항쟁에 대한 자랑스러운 마음이 자괴감으로 바꼈다고 진술한 분들이 많다”라며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위해 참여했던 사람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된 현실이다” 라고 주장했다.

진한 여운 남겨

연극이 끝난 뒤 출연자들과 관객들은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고개를 숙였으며, 이중에선 흐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 연극에서 주인공 최정호 역을 맡은 김수철 배우는 극 중에 ‘고맙습니다’라고 작게 말한다고 한다. 그는 “희생을 치룬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지숙 작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민중들이 옳음을 생각하고 선택했기에 지금의 세상이 지탱되는 것”이라며 “거창한 일이 아니고, 일상을 사는 우리들이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전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학교 학생들로부터 시작됐기에, <거룩한 양복> 연극에 우리 학교 재학생이 참여했다. 이준표(물리학 17) 배우는 “극단에서 부산대학교 학생이 출연자가 되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해 참여하게 됐다”라며 “부마항쟁에 참여하신 분들을 기억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밝혔다.

연극에서 재현된 부마항쟁 당대 상황과 시위에 참여한 인물을 본 시민들은 연극이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최준용(남구, 21) 씨는 “학생운동의 모습과 당시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연극으로라도 느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연극을 통해 열정과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라며 “부마항쟁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해 연극을 잘 만든 것 같다”라고 호평했다.
 

사진 취재진 제공

배현정 기자  feliz_ing@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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