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직업이 없으므로 아이가 어린이집 종일반에서 맞춤반으로 바뀐다는 내용이었다. 1학기는 대학교 강의가 있어서 엄마의 직업이 확실했으나, 2학기에는 강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강의 외에 몇 개의 특강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청탁받은 소설들을 가을, 겨울 동안 써야만 했다. 지금 쓰고 있는 부대신문의 ‘열린결말’도 한 번 더 남아 있었다. 나는 수화기 건너편의 담당자에게 시간강사로서의 직업은 없어졌지만 ‘소설가’로서의 직업은 유지되는데, 그래도 종일반이 안 되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4대보험 유무와 파트타임일 경우 주 , 월 별 노동시간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부산문화재단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다시 전화를 했다. 내 상황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직업임을 공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발간된 소설집과 써야 할 원고청탁서를 제출하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증명서를 제출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각 재단의 담당자는 그런 서류들이 소설가임을 말해줄 수는 있으나, 현행 제도상 어린이집 맞춤반을 종일반으로 바꾸기에는 어려울 것이라 말해주었다. 역시나 4대보험 유무와 주, 월 단위의 노동시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알아볼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 어린이집 종일반, 맞춤반 제도는 만 0-2세 어린이 부모의 맞벌이 여부, 다자녀 여부에 따라 나누어졌다. 맞춤반일 경우 9시부터 15시까지 6시간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으며, 그 외의 시간에는 시간당 4000원의 추가보육료를 부모가 부담해야 했다. 이에 따른 부작용들이 생기자 정부는 15시간까지 쓸 수 있는 무료바우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니 무료바우처를 사용하면 실질적으로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추가보육료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더욱이 나는 아직 어린 아기를 늦은 시간까지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지 않아서, 맞춤반으로 변경이 되는 것이 큰 부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화가 나고 답답한 것은, 소설가를 ‘무직’으로 본다는 현행 제도의 시각 때문이었다. 나를 비롯하여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일반 회사원이나 직장과는 달리, 일을 하는 시간이 유동적인 편이다. 종일반, 맞춤반의 기준이 되는 주 몇 시간보다 더 일하는 날이 있고, 덜 일하는 날이 있다. 원고가 써지지 않을 때는 하룻밤을 꼬박 책상 앞에 앉아서 뜬 눈으로 지새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밤을 샌 날에 다른 날보다 많은 양의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앉아서 혹은 서서, 산책을 하면서 어떠한 글들을 구상하고, 상상하고, 떠올리며,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글이 완성되어 있는 일들이 많다. 글을 쓰고, 그에 따른 원고료를 받는, 그러니까 다른 직업 종사자들처럼 노동을 함이 분명하지만, 노동시간이 좀 더 탄력적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뿐이다.

얼마 전 끝난 tvn의 한 드라마에는 ‘무용(無用)’한 것을 좋아하는 주인공이 나왔다. 하늘의 별과 바람, 꽃,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는 주인공의 대사를 보면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외국 소녀들의 이름”,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랜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별 하나마다 붙여보던 시인의 모습이 시와 함께 겹쳐졌다. 시인이 별을 세면서 불렀던 이름들은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그야말로 무용한, 무가치한 것들이었다.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만이 ‘유용(有用)’하다 여기는 사회에서, 시인은 왜 무용한 이름들을 그렇게 불렀을까.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일이 직업이 없는, 직업이 아닌, ‘무용’한 상태라고 말하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윤동주 시인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시를 썼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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