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문창회관 4층 모퉁이에 있는 회의실의 의자에 앉아 준비한 원고를 꺼내 들고는 지루한 논쟁의 서막을 알렸다. “대의원총회의 결의를 무효로 한다는 결정을 구합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총학생회 임원들의 질의가 오갔다. 회의가 중반 즈음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는 깨달았다. 최소한 과반수의 임원이 내 요구를 거부할 것이라는 사실을. 대다수 임원은 논리적 해석 대신 ‘직관’과 ‘정무적 판단’에 의거하여 장래에 있을 대의원총회의 소집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으며, 나 역시 그 논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는 전체 대의원의 3분의 1도 참여하지 않은 총회의 결의에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하였고, 몇몇 임원들은 규정상 의결 시의 재적인원에서 공결 인원을 제외하는 것은 관행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맞섰다. 나는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그 논리대로면 재적인원 100명 가운데 97명이 공결인 경우에는 3명 출석과 2명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이를 긍정하는 임원은 없었다. 그러나 부정하는 임원도 없었다.

회의 말미에 임원들은 나의 요구사항을 평결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일 처리를 민주적으로 하면 좋지만 그것은 너무 이상적’이라는 취지의 평론이었다. 나는 분명히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그것도 대학 구성원이 총장을 선거로 뽑는 나름 민주적인 대학의 학생으로 살고 있는데, 이 모든 ‘민주’가 현실이 아닌 이상에 불과하였단 말인가. 나는 약 4.19초가량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괴로운 심정을 심란한 눈빛으로 표현하였으나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래전, 누군가가 나에게 총학생회에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었다. 나는 되묻는다. 총학생회의 이상은 무엇인가?총학생회칙에 규정된 총학생회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제2조(목적) 본회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학생자치의 운영과 본회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과 권리의 존중, 실천적 행동을 통해 권력과 자본의 위협으로부터 진리의 전당을 지켜내고 본회의 회원들의 권익을 수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적이지 않은 총학생회를 총학생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회칙에 따르면 민주적이지 않은 총학생회는 사이비에 불과하다.

나는 나의 요구사항이 배척된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민주주의를 단지 ‘이상’ 쯤으로 여기는 학생대표자들의 인식을 더 우려한다. 민주주의는 이상에 머물러있지 않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생활이다. 우리는 공동체의 주인이다. 우리는 출마하고, 선거하며, 투표하고, 토론하며, 분노하고, 비판하며, 연대하고, 탄핵한다. 게으른 민주주의는 관료주의 혹은 파쇼로 귀결될 뿐이다.

일각에서는 학생들의 무관심을 비웃는다. 정말 그런가? 나는 재차 되묻는다. 총학생회는 자신의 존재감을 1년에 몇 번이나 드러내는가. ‘중앙운영위원회’나 대의원총회’의 존재를 아는 학생은 몇 명이나 되는가. ‘단과대학 학생회’가 있는 줄 아는 교수는 몇 명인가?총학생회칙을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학생의 참여가 저조한 까닭은 그들의 인식 속에 총학생회를 향한 무관심이 이유인가 총학생회라는 존재의 부재가 원인인가.

9월이 끝났다. 남은 시간 동안 학생과 그 대표자들은 자문해보길 바란다. 학생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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