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이 그저 물감을 흘린 것 같다. 형태나 의미를 쉽게 알 수 없지만 그 속에는 작가가 생각한 본질이 담겨있다. 이는 1910년 최초로 탄생하게 된 추상주의다. 
 
추상주의는 실제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자연주의를 거부하며 등장했다. 당시 사진기가 발명돼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 그림이 경쟁력을 잃기도 했다. 추상화가들은 모든 실체 안에 보편적 진리가 있다고 믿는 신지학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그림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본질을 표현하는데, 이는 우리가 쉽게 의미를 알아볼 수 없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색채 △선 △형태 △질감만으로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고자 한 추상화는 당시 엄청난 진보였다. 
 
<무제(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를 그린 사람은 러시아 화가인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다. 1908년 그는 어떠한 대상도 묘사되지 않고 색채만으로 구성된 그림 한 폭에 눈부신 감동을 느낀다. 우연히 뒤집힌 자신의 그림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색채를 자유롭게 조합해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색상은 건반이고 정신은 피아노, 화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영혼을 울리는 손’이라고 말했다. 색채와 형태가 음악처럼 어우러지는 조화를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작품 제목에 붙은 △즉흥 △작곡 △변주와 같은 단어에서 잘 드러난다. 이처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낭만을 드러낸 그림을 따뜻한 추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반면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색 △점 △선 △면 등 기본 조형 요소로 금욕적인 그림을 그렸다. 칸딘스키와 달리 본질을 표현하는 데 주관과 개성을 제거한 것이다. 그는 우주와 자연에 기하학적 추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순수한 조화와 균형이 있다고 믿었다. <뉴욕시 I>를 보면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빛의 3원색만이 그림에 나타난다. 뉴욕을 가장 본질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하려는 의도다. 그는 ‘자연의 외형들을 버리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고 말하며 형태를 점점 단순화시켰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감정을 배제해 차가운 느낌을 주는 ‘신조형주의’ 미술 양식을 띠고 있다. 
 
추상주의는 신지학을 구체화시켰을 뿐 아니라 이후 생겨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등 다양한 미술양식에 영향을 줬다. 21세기에는 디지털 장치를 통해 추상미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몬드리안 계보를 잇는 만프레드 모어(Manfred Mohr)는 컴퓨터를 통해 추상적인 수학 세계를 이성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김창언(미술학) 교수는 “*프랙털(fractal)이나 복잡계 현상, 양자 영역과 같은 미시세계들은 추상미술로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했다.
<무제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 (바실리 칸딘스키, 1910作)
<뉴욕시 I> (피트 몬드리안, 1942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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