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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친람’과 ‘자유방임’ 사이의 길
중년의 남자가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제법 성공한 남자는 고향에 호텔을 짓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자와 편안한 여생을 살고 싶다. 부인이 된 여자는 어느 날, 고향 주민을 위해 자선 바자를 개최한다. 남자는 이 바자가 지역 유지들의 탈세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간파한다. 그래서 남자는 젊은 시절 자신이 빠지곤 했던 위험과 고난을 사랑하는 여자가 겪지 않도록 ‘삶의 지혜’를 설파한다. 그러자 여자는 “당신이 처했던 모든 위험을 내 삶에서 제거해버린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고 탄식한다.
 
2014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윈터 슬립>은 주체적 삶, 동일성, 차이와 반복, 재현의 인식 체계 등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직면한 대학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서경(書經)에 등장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은 세종, 정조, 청나라 옹정제 그리고 진시황의 집무 방식을 거론할 때 쓰이는 말로 매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사를 돌본다는 뜻이다. 이와는 달리 큰 틀에서 방향만 정하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방식, 즉 만기친람에 대응하는 이 방식을 범박하게 ‘자유방임’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교육 주체들의 태도는 자유방임과 만기친람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윈터 슬립>의 ‘여자’의 태도 그리고 삶의 어려움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남자’의 관점 사이에서 이 시대를 사는 교육의 주체들은 길을 잃고 있다.
 
언젠가부터 ‘쿨’하다는 표현이 최고의 덕목이 되었다.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점점 옅어지는 작금의 세대에 딱 들어맞는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학교에서 시행하는 상담 제도는 결코 ‘쿨’하지 않다. 이미 성인이 된 학생들은 충분히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율과 자유를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교수와의 상담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담은 대부분 요식적인 것이 되고 만다. 수업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혹시나 학문적인 내용을 오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누차 점검하고 틀린 점을 지적해주는 만기친람의 태도는 개인의 자율을 중시하는 우리 시대 학생들과 마찰과 갈등을 유발하기 쉽다. 
 
그래서 많은 교육 주체들은 인간의 자유와 자율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만기친람과 거리를 유지한 채 강단에 선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쿨’한 외양 속에 타인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을 은폐한다. 작금의 대학사회는 신이현의 소설 제목처럼 위선의 교육자들에겐 참으로 ‘숨어있기 좋은 방’이다. 교육의 주체들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자기 기만적인 현 상황을 자신의 거울에 투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만기친람을 몸소 실천하는 교육자 역시 ‘만기’(온갖 일)를 ‘친람’하는 본인의 태도가 자기만족과 퇴행적 의무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또한 점검해야 할 것이다. 
 
하늘과 도가 높고 깊다고 할 때 검을 현(玄)자를 쓴다. 그리므로 현은 검고 어둡다는 의미 이외에 깊고 높다는 의미도 가진다. 큰 학문을 행하는 대학이 가야 할 길은 지금 매우 어둡다. 그러나 이 어둠은 그만큼 깊고 높아서 생긴 어둠이다.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반영적 태도는 언젠가 ‘어둠’을 ‘높음’과 ‘깊음’으로 변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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