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HIV/AIDS 환자가 당하는 의료차별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특정 질병 때문에 수술과 입원을 거부하는 진료행위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31일 HIV/AIDS 환자가 겪는 의료 차별에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책으로 의료인의 AIDS 교육을 강화하고 의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치료할 수 있는 병, 나아지지 않는 인식

에이즈(AIDS)는 발달한 의료기술 덕분에 치료할 수 있는 병이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여전히 HIV와 AIDS를 무섭고 불결한 병으로 생각한다. 2015년에 질병관리본부는 우리나라 국민 1,000명에게 AIDS와 관련한 연상이미지를 물었다. 그 결과 ‘불치병/죽음’과 ‘문란한 성생활/성매매’가 1위(25.3%)와 2위(16.7%) 이미지로 꼽혔고 ‘더럽다/혐오스럽다’는 대답도 많았다. 인식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도 HIV/AIDS 환자를 기피한다. 지난 6차 세계가치조사(2010년~2014년)에서 우리나라 국민 중 88.1%가 ‘AIDS 환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는 OECD 평균 27.3%의 3배를 넘는 수치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손문수 대표는 “편견과 혐오로 일상에 불편을 겪는 HIV/AIDS 환자들이 많다”라며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직업을 선택할 때도 거부당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밝혔다.

조장된 공포와 만연한 오해

HIV/AIDS 환자들은 그들을 향한 비난에 고통받고 있다. 지난 5월 러브포원이 발표한 <HIV/AIDS에 대한 20대~30대 HIV감염인의 인식 조사>에서 감염인 중 87.9%가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보다 주위에서 듣는 AIDS 혐오나 비하 발언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답했다. 

고통엔 언론과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언론과 미디어는 HIV/AIDS 환자를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해 차별적으로 다룬다. 2017년에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 공동 기획단’은 HIV/AIDS환자들에게 ‘감염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있는 영역’을 물었다. 그 답변으로 ‘인터넷 등 미디어의 에이즈 관련 댓글’(78%)이 가장 많았고, ‘에이즈 관련 언론보도 태도와 방향’(77%)이라는 응답이 뒤이었다. 언론과 미디어가 가진 부정적인 시각은 국민에게로 확산된다. 국민 대부분이 언론과 미디어로 에이즈를 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 1,000명을 조사한 질병관리본부의 <2015 에이즈 행태조사 보고서>에서 69.2%가 TV로 에이즈와 관련한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검색(12.5%)과 신문(10.3%)에서 지식을 얻는 국민의 수도 적지 않다. 장애여성공감 나영정 정책연구원은 “언론은 에이즈와 공포를 연관지어 보도하고 있다”라며 “이는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사는 환자들의 삶도 위협한다”라고 말했다.

HIV/AIDS환자는 병원과 의료기관에서도 차별받는다.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의 감염을 우려해 수술이나 입원을 거부당하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6 감염인(HIV/AIDS) 의료차별 실태조사>에는 HIV/AIDS환자 208명 중 57.9%가 ‘HIV 감염 확인 후 약속된 수술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입원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심각하다는 의견도 50.3%에 달한다. 요양병원도 일반병원과 다르지 않다. HIV와 AIDS가 불치병이 아닌 만성질환이 되면서 장기요양병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요양병원 역시 간병인이나 다른 환자들이 에이즈 전염을 우려해 HIV/AIDS환자의 입원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손문수 대표는 “에이즈를 진료하는 감염내과 외에는 의료진조차도 대중과 같은 오해를 하고 있다”라며 “요양병원마저도 거부해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이 갈 곳을 잃었다”라고 전했다.

HIV/AIDS환자조차도 자신을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 공동 기획단’은 HIV/AIDS 감염자의 내재적 낙인 수준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참여한 104명 중 78.8%가 ‘자신에 대한 소문이 나는 게 두렵다’고 답했으며, 36.5%는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환자가 외부에서 왜곡된 정보를 접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나영정 정책연구원은 “HIV/AIDS환자들은 인터넷이나 사회에서 사실이 아닌 ‘공포와 불안’을 갖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럴 때마다 환자는 자신이 걸린 병을 자책하며 스스로 내적 낙인을 찍게 된다”라고 전했다.

불편한 눈초리에 치료마저 망설여

결국 HIV/AIDS환자들은 각종 편견으로 치료받기를 주저한다. 러브포원은 작년에 2~30대 HIV/AIDS환자 166명에게 ‘병원 이용이 어려운 이유’를 물었다. 중복답변으로 ‘아는 사람을 만날 것 같다’(76.5%)와 ‘HIV 관련 진료 기록이 남을 것 같아서’(65.1%)가 주된 이유였다. 사회적 낙인은 HIV/AIDS환자들이 치료받기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2016년 감염인 의료차별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76.2%가 ‘다른 질병으로 병원 방문 시 HIV감염인임을 밝히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이에 나영정 정책연구원은 “환자들은 자신의 감염사실이 밝혀지고 병원에서 거부당할까봐 병원 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라며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다른 질병을 적절히 치료하지 못해 건강이 손상되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상처는 모두의 힘으로 아문다 

환자가 의료 환경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우선 사회적으로 HIV와 AIDS에 관한 오해를 해소해야 한다. 이에 정부와 의료계가 대국민 캠페인이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안이 있다. 또한 누구나 HIV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과 감염 시 대처 방법을 알려야 한다. 나영정 정책연구원은 “에이즈가 감염 환자만의 문제여서는 안 된다”라며 “모든 국민이 에이즈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법을 알 때 비로소 에이즈에 대한 낙인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HIV/AIDS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이중 의사국가고시에 에이즈와 관련한 문항을 넣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또한 예비 의사들이 HIV/AIDS 환자를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도록 대학교 교과과정에서 임상경험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

HIV/AIDS 환자의 치료를 거부한 의료기관에 강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병원은 <의료법> 제15조에 따라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일부 병원은 진료를 지연하거나 상급 의료기관으로 유도하는 등 간접적인 형태로 HIV/AIDS환자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명백한 차별이라고 판명된 경우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의료진에게 HIV/AIDS환자라는 이유로 의료거부를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다.

차별을 막고자 법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대상에 질병 정도가 심한 HIV/AIDS환자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법으로 환자들에 대한 차별을 막을 수 있다. 손문수 대표는 “장애뿐만 아니라 질병의 정도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대상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라며 “상태가 많이 악화된 환자들을 법적 보호 아래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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