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 교수

이남종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쏜살같은 한국 사회의 속도를 이겨낼 수 있는 것들은 드물기에 이 망각이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2013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던 한 남자였던 이남종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유는 국정원 대선 개입의 증거가 드러났지만, 지지부진한 수사와 집요한 은폐공작에 대한 항의였다. 분신하기 전에 유서까지 남긴 그였지만, 사실상 언론은 그의 죽음을 외면했다. 경찰조차 그의 유서를 숨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보도자료를 뿌려서 “현재까지 수사한 바로는 ‘부채, 어머니의 병환’ 등 복합적인 동기로 분신을 마음먹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씨가 신용불량 상태에서 빚 독촉으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이남종의 분신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단순 자살로 결론지으려는 의도가 다분했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경찰은 “경제적 이유 말고는 분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동생의 진술을 첨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일 공개된 이남종의 유서는 이런 경찰의 해명이 명백하게 ‘은폐 시도’였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한다. 

이남종이 남긴 말들은 결코 그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증언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저항할 것을 주문하는 말들을 남겼다. 경찰이 밝힌 내용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도대체 이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마리오 감독의 <더 블랙>은 이 사실의 차이를 비집고 들어간 영화이다. 다큐멘터리이면서도 드러난 사실이 아니라 감춰진 사실을 추적해야한다는 독특한 목표를 이 영화는 제시한다. 

<더 블랙>은 이런 의미에서 이남종이라는 그을린 얼룩에서 시작해서 국정원 댓글을 수사했던 검찰조직의 이면까지도 관통해 나가는 다큐멘터리이다. 어떻게 보면 소재는 대선 불법 개입 사건이지만, 실제로 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한 서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 <1987>의 전반부에 그려졌던 권력 조직 내의 갈등이  <더 블랙>을 통해 다시 생생하게 드러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자가 허구라면 후자는 사실이라는 정도. 

권력의 작동에 대한 보편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더 블랙>은 개념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했던 이들의 시선을 확장시켜준다. 국정원 댓글 지시를 누가 내렸고, 어떤 방식으로 그 명령체계가 이행되었는지 사실 여부를 영화는 파고든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니, 테리 길리엄 감독이 만든 <브라질>이라는 영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브라질>이 묘사하는 그 원활한 ‘관료주의’를 <더 블랙>은 사실 관계를 통해 재구성해 보인다는 점에서 비교해서 볼만하다. 결국 ‘관료주의’의 목적은 일을 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그대로 두기 위함이다. <더 블랙>은 국정원 대선 개입과 관련한 수사가 왜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음모론에 빠지기 쉬운 소재를 다루지만, 함정을 잘 피해간다는 것도 미덕이다. 드러난 사실에 근거해서 숨겨진 진실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지만 다큐멘터리답지 않다. 어떤 이들에게 이 결락이 결점으로 보일 것이다. 남은 문제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관객들이 지나간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다시 떠올려 보는 것이다. 지난 정권은 권력의 최대치를 가장 교묘하게 이용하려고 했던 집단이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겠다. 또한 문제는 하나의 정권이라기보다 한국의 엘리트집단을 물들이고 있는 자기보존의 욕망이고, 결국 각자도생의 이익추구가 권력의 타락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블랙>은 이런 의미에서 다소 늦게 도착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다소 이른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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