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자 기자라서 때론 곤혹스러운 일을 겪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쯤 그랬다. 취재처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를 맡았다. 그런데 취재원이 1학년 때 교양수업을 들었던 교수, 아니 시간강사였다. 대학본부와의 임금교섭에 대한 질문을 던진 뒤 수초 간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그가 힘든 현실을 털어놔야하는 걸 치욕스럽게 느낄까 걱정됐다. 그는 담담히 대답했고, 필자는 처음 듣는 사실에 당황스러움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강사법 기사 취재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이상룡 정책위원장을 만났다.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에서 강사법 개선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강사법이 기약없는 유예를 멈추고, 시행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한 일이라 의미가 있었다. 강사들의 현실을 묻자 예상했던 것보다 참담한 단어들이 쏟아졌다. ‘6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직’, ‘고용불안’, ‘저임금’ 등이었다. 이것이 진정 교육현장에서 이뤄지는 일인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평소 수업을 듣는 필자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강사의 수업이 어떤 여건에서 만들어진 지 모른 채 말이다. 

같은 대학 안에 있지만 교원의 지위인 정규직 교수와 그렇지 않은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 달랐다. 소청심사 청구권 등 신분보장도 되지 않았으며, 방학 중 임금은 물론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도서관이나 주차시설 이용에서 차별대우가 있기도 했다. 18차례나 되는 논의 끝에 합의했다는 개선안이 이러한 현실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실제 학생인 필자가 느끼는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강사의 차이는 ‘아닐 비(非)’자가 붙었는지의 여부일 뿐인데도. 이에 “가르침을 주는 이는 모두 선생이다”라는 과거 은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인터뷰 후 줄곧 이 한 문장에 부딪혀야 했다. 

필자는 2주간 강사법에 대한 기사를 쓴다. 그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아마 강사법이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는 사실 명쾌한 설명이나 논리를 펼치지 못한다. 이는 순전히 학생이자 기자로서의 이기적인 바람이기 때문이다. 학생으로서 더는 이면에 힘겨운 현실을 숨긴 이들을 강의실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다. 또한 기자로서는 선생님이었던 그들에게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현실 따위의 질문을 하고 더는 마음 아프기 싫다. 이러한 바람들이 이뤄지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와 대학이 강사법을 시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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