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감독 정민규 | 2018)

‘죽음은 언제나 산자의 몫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남은 이에게 주는 아픔을 가늠케 하는 말이다. 이처럼 산자는 망자의 죽음을 고통스레 감내할 뿐이다. 영화 <행복의 나라>는 이 산자의 비극적 현실을 조명한다.

진우(이왕 분)는 자살하려는 민수(지용석 분)를 구하다 죽는다. 이에 혼자 살아남은 민수는 죄책감에 고통스럽다. 이 죄책감을 덜고자 매년 진수의 제사에 참석하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진우의 모친 희자(예수정 분)도 아들의 죽음에 비통하다. 진우가 죽은 지하철역에 빈 눈으로 서있던 희자의 모습은 고통스런 산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렇게 진우의 죽음은 ‘산자’인 민수와 희자의 몫이 되고 만다.

그간 민수를 대하는 희자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친절했다. ‘마치 아들처럼 여긴다’라는 주위 평까지 들을 정도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희자를 마주할수록 민수는 힘이 든다. 이제 모든 걸 잊고 행복하고 싶은 것이다. “언제까지 와야 하는데요?” 결국 민수는 8년 만에 진심을 토한다. 희자는 곧바로 눈을 치켜뜨며 반발한다. “이제 그만 오겠다고?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니?” 이전과는 다른 태도다. 희자도 민수의 잘못이 아님을 안다. 민수가 진우를 죽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자는 진우의 죽음으로부터 민수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꼭 다음에도 오렴”, 희자는 민수 손에 반찬을 가득 쥐어주며 당부한다. 일종의 경고였다. 
  민수와 희자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민수와 희자는 갈수록 불행해져만 간다. 이들에겐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무색할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긴커녕 이성을 잃어가는 민수, 슬픔에 사무치는 희자다. 당초 민수는 무속신앙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소용없음을 깨닫자 민수는 결국 무속인을 찾는다. “저 정말 살고 싶어요” 무속인 앞에서 빌며 애원한다. 이후 민수는 부적과 훔친 진우 옷으로 굿을 하기에 이른다. 희자의 상황도 비참하다. 이전에는 지하철역에 찾아가도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지만 결국 감정이 폭발해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치며 흐느낀다. 진우를 향한 그리움과 민수에 대한 원망이 터져 나온 순간이다. 이 고조된 감정은 굿을 하는 민수를 목격한 후 절정에 달한다. 진우의 옷을 태우며 굿을 하는 민수의 행동에 분노한 것이다. “진우야!” 희수는 울부짖으며 민수를 때리다 기절하고 만다. 이렇게 둘의 관계는 점차 갈등으로 치닫는다. 이때부터 예상하게 된다. 저 둘은 행복할 수 없구나. ‘행복의 나라’는 없구나라고.

모든 문제의 발단은 진우의 죽음이다. 이것이 불행의 발단이었다. 하지만 민수와 희자, 스스로가 자신을 더 불행토록 만든 점도 부정할 순 없다. 둘은 사태의 본질을 잊는다. 진수의 죽음에 ‘그 누구도 잘못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민수는 희자만 없으면 더는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 착각했고, 희자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민수의 모습에 위안받으려했다. 둘 모두 무고한 서로를 죄인처럼 여긴 것이다. 결국 이는 스스로를 향한 화살로 되돌아온다. 물론 민수와 희자의 아픔은 감히 예단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의도치 않게 가해자의 삶을 살게 된 민수, 한 순간에 아들을 여읜 희자의 아픔을 그 누가 함부로 논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정처 없이 향해 갔다. ‘불행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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