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의 청소 아르바이트를 그림으로 그린 책. 병원에 다녀온 진료 기록을 엮은 책.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직접 써내려간 책들이 있다. 이는 기성출판사가 아닌 독립출판사로부터 탄생된다. 단지 소소한 일상과 취향을 고스란히 기록하고픈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독립출판이란 작가 개인이 책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성 출판사를 뒷받침하는 자본과 출판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행위다. 이 때문에 기존의 책들보다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책이 만들어진다. 상업성에서 탈피하여 실험적이고 일상적인 주제가 주를 이룬다. 흔히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형태의 책뿐 아니라 아티스트 북, 진(Zine)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매년 독립출판물을 유통하는 독립서점의 수가 늘고 있다. 동네 서점을 소개하는 앱 운영사 퍼니플랜은 <2017 독립서점 현황 조사>에서 전국 독립서점이 277곳이며, 서울에는 128곳, 부산에는 15곳이 분포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관련 행사와 사업도 활기를 띈다. 일례로 작년 독립출판 제작자들이 주최한 ‘언리미티드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에는 무려 638팀이 참가했다. 부산에서도 ‘부산아트북페어-프롬더메이커즈’ 행사와 같이 독립출판물을 홍보하고 독자와 교류하는 장이 만들어졌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는 “독립출판이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와 달리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나’에게 맞는 책을 선호해

독립출판 제작자는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과 개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관심이 커져 독립출판을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화제가 된 독립출판물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의 백세희 작가는 “기성 출판물의 형식에 맞추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것이 독립출판의 매력”이라며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하는 것이 흥미로웠다”라고 전했다.

독립출판물을 찾는 소비자의 수도 느는 추세다. 독립출판물이 주로 일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개개인의 세분화된 욕구나 기호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독립서점을 이용하는 심나윤(남구, 21) 씨는 “평소 영화관련 잡지나 비평을 좋아하는데, 기성 출판물에서 볼 수 없는 주제들의 책이 많아 즐겨 찾는다”라고 말했다. 한빛비즈 이홍 편집이사는 “요즘은 덕후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특정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독립출판물의 소비자층이 확대됐다”라고 전했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해 독립출판물 이용자 수가 늘기도 했다. 각종 1인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자신이 만든 독립출판물을 홍보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개인도 물품을 사고파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판매 유통 채널이 확대됐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샵메이커즈 구나연 공동대표는 “포털사이트에 온라인샵 구축이 편리해진 것이 큰 장점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폭넓은 독립출판 생태계가 되려면

  독립출판은 글의 다양성을 확보해준다. 우선 소재의 제한이 없어 글이 다양해질뿐더러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기에 진입장벽을 낮춘다. 이로 인해 다양한 작가들이 탄생하고, 소비자들은 넓은 폭의 문화를 향유하고 선택할 수 있다. 원종원(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작가의 진입장벽을 낮춰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라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독립출판이 창의력을 발전시켜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소수의 견해나 생각을 전달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독립출판이 대중성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은수 대표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수 취향이 책으로 완성되는 것은 사회적 다양성이 실현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독립출판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선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독립출판에 맞는 유통구조가 필요하다. 기성 출판사는 유통비용을 고려하므로 책의 내용과 제작에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독립출판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장은수 대표는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존 플랫폼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유통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독립출판물 작가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원종원 교수는 “독립출판물이 소비될 수 있는 환경은 작가가 조성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회가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할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이는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독자와의 교감에 주목하다

북그러움(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동)

독립출판을 넘어 독립출판물과 함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 독자들이 책과 함께 쉬어가는 공간. 이러한 고민을 거쳐 탄생된 독립서점 ‘북그러움’이 있다. 북그러움은 책을 매개로 하여 방문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주목했다. 북그러움 대표는 “방문객들이 독립서점에서 자신이 몰랐던 면모를 찾아 꿈꾸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북그러움은 자신만의 콘텐츠로 책을 만들고 싶은 방문자들에게 관심을 뒀다. 실제로 이러한 방문자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먼저 글쓰기 자체에 집중하는 모임인 ‘북;;끄적’을 마련했다. 더 나아가 책 제작에도 관심을 두는 모임인 ‘북덕북덕’도 운영한다. 북그러움 대표는 “책을 많이 사서 보는 분들도 기획, 인쇄, 유통 그리고 디자인까지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라며 “이들을 위해 이러한 정보를 알려드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두 모임은 모두 기수제로 꾸려진다. 글쓰기와 제작에는 최소 3~4주가 소요되기 때문에 참여자 간의 결속력과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독립출판 작가를 초대하는 프로그램도 방문자들에게 인기다. 작가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을 방문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중 작가와 책방을 연결한 ‘북토크 콘서트’는 사람들이 다음에도 독립서점을 찾아오게끔 하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심야책방 △북;;쏘시개 △책 골라주는 음악회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북그러움 대표는 “독립서점의 많은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제작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라며 “이런 점이 서점에 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북그러움 대표는 더 많은 사람이 독립출판물을 통해 숨어 있는 독서취향을 깨우치길 바랐다. 기성출판물과 달리 실험적이고 b급 감성의 소재가 많기 때문에 자신이 몰랐던 취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기성도서와 다른 ‘나’만의 메세지

고스트북스(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생각을 책에 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작가이자 ‘고스트북스’ 독립출판사 대표들이다. 이중 한 명은 과거 자신만의 그림 전시를 꾸준히 해오다 새로운 방식의 작품을 고민했다. 여기서 그림을 책으로 엮어보는 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출판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판사로서 책 제작에도 이들만의 신념이 확실했다. 수많은 출판사와 출판물 중에서 차별화시킬 수 있는 매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스트북스 대표는 “기성 출판사의 책은 완성도가 있지만 소재가 획일화돼 있다”라며 “반면 독립출판물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흔한 주제가 아니므로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독립출판물 <냉탕과 온탕> 시리즈에서 기성출판물과의 확연한 차이점을 엿볼 수 있었다. 한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표현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전개가 신선하다.

독립출판사는 소규모로 운영되고 본인이 직접 출판하는 곳이기에 제작비가 부담된다. 이 때문에 문을 닫는 독립출판사들도 많다. 고스트북스는 이러한 재정문제를 이겨내고 자신들의 자리를 약 9년 동안 지켜왔다. 이들은 책방수익으로 책을 제작하지만, 제작비가 모자랄 경우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한다고 한다. 고스트북스 대표는 “제작비 여건상 가장 이상적인 책의 형태를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책의 외관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지만 콘텐츠의 양질화로 대처하려 한다”라고 전했다.

고스트북스는 앞으로 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길 바랐다. 이는 많은 독립출판물을 실을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고스트북스 대표는 “다양한 생각을 책으로 담아내어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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