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영 소설가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8월의 어느 날, 50명의 부산대 학생들이 모였다. 2박 3일로 진행된 ‘2018 여름 독서캠프 북새통’ 때문이다. 50명의 학생들은 5명씩 10개의 조로 나뉘어서 책과 관련된 여러 행사를 하였다. 첫째 날은 해당 도서를 읽고, 조별로 소모임 활동을 하였다. ‘지역, 청년, 대학생’이란 전체 주제에 맞추어 해당 도서의 내용과 실제 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독서퀴즈대회를 하고, 주제와 관련된 영화를 보기도 했다. 둘째 날은 ‘지역을 탐(探/貪)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해당 도서 속 배경이 된 장소를 비롯하여, 그동안 미처 가보지 못했던 부산의 명소들을 방문하였다. 지역의 표정 찾기, 우리끼리 내력 만들기, 골목지도 그리기를 한 후 최종적으로 지역견문록을 작성하여, 발표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는 해당 도서를 쓴 작가를 초청해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독서캠프 진행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부끄럽지만, 해당도서의 작가가 나였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 그동안 쓴 단편소설을 모아서 소설집 <모두의 내력>을 출간하였다. 등단작인 <해바라기 벽>부터 가장 최근에 발표한 <상자>까지 8편의 소설이 든 단편소설집이 부산의 호밀밭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책과 관련된 행사에 나는 강연자로 초대를 받아, 책을 편집했던 출판사 편집자와 함께 강연을 하고 왔다.

어느 작가든 그렇겠지만,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 중에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못한다’ 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듯싶다. 소설을 쓰는 과정은 그 자체로 나와의 싸움이기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쓰고, 지우고, 쓰고 다시 생각하고, 고치는 지난한 과정은 오롯이 작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을 완성한 후, 주변 지인들에게 감상을 묻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의 감상이란 소설 자체의 완성도, 즉 플롯이나 인물, 배경, 주제와 관련된 것이지, 소설을 읽은 독자의 개인적인 감상이나 소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잡지에 발표하기 전, 하나라도 고쳐서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순전히 작가 개인의 욕망과 욕심에서 비롯된 소설 보여주기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내가 쓴 책을 읽고 이렇게나 다양한 내용들이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독서캠프’는 작가인 나에게도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점과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 그리고 장점과 단점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드판에 빼곡히 붙어있던 노란 포스터에는 작가에게 궁금한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로드킬’에서 차에 치였던 것의 정체는?”, “교수님은 왜 옷을 벗고 있나요?벗어야만 했나요?”, “‘모두의 내력’이란 제목은 무엇을 나타낸 건가요?”, “‘칼’에서 소녀가 미래를 보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이 소설에서 그것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등 많은 질문들을 받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지역에서 여성작가로서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 였다. 단순해 보이면서도 생각할 여지가 많은 질문이었다. 나는 역으로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을 수도권에 사는 남성작가에게도 할까요?왜 유독 ‘지역’에서 사는 ‘여성’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하는 걸까요?그건 그 자리에 있던 학생독자들에게 묻는 질문인 동시에 나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지역’, ‘여성’, ‘작가’라는 세 가지 단어는 어떠한 한계와 제약을 지닌 대상으로 누군가에게 와 닿는 것일까. 그렇기에 그 세 가지 단어를 나란히 붙여서 사용할 때는 ‘어떤 대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러한 노력을 했다’와 같은 답을 은근히 기대하는 것일까.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 물음은 나에게 해결되지 않은 숙제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그리하여 다르면서도 비슷한 질문을 되려 해 보려 한다. “지역에 사는 청년이자 대학생으로서의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 에 대한 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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