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과학칼럼리스트

 

공학 대학의 연구실에 연구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빛으로 물질의 3차원 표면을 정밀하게 분석하던 연구팀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데이터 처리 속도였습니다. 물질의 넓은 영역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고해상도 카메라를 사용해야 하지만, 부수적으로 발생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는 분석속도를 느리게 만든 겁니다. 이제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을 개선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카메라 성능을 낮출지를 결정해야 했지요. 그들에게 남은 과제 연구 기간은 고작 2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꺼냅니다. 고성능 카메라를 사용하고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을 수정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어서 꺼낸 말은 ‘우리에겐 무어의 법칙이 있잖아’하며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지나면 컴퓨터 처리속도가 빨라질 거라는 겁니다.

2005년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사는 1965년 4월에 발행한 한 잡지를 구하는 광고를 냅니다. 인텔이 40년이 지난 ‘일렉트로닉스 매거진’ 잡지 하나를 찾기 위해 애쓴 이유는 4페이지에 걸쳐 실린 기사 하나 때문이었죠. 페어차일드라는 반도체 회사에 다니던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전자산업의 미래를 예측해 쓴 기사입니다. 전자산업은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그 해가 1947년이었고 하나의 실리콘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와 성능이 2년마다 2배씩 늘어났습니다. 이 내용이 기사의 핵심이고 이 현상이 미래에도 유효하다는 예측이었죠. 이후 ‘무어의 법칙’이 됐고 최근까지 놀라울 정도로 맞아 떨어졌습니다. 1978년 인텔8086이라는 반도체 안에는 2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있었고 17번째 제품에서는 25억 개라는 막대한 수가 됐습니다. 

어쩌면 전자산업의 모든 발전은 사소한 원고 하나에서 시작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원고를 쓴 후 무어는 인텔이라는 회사를 차렸고 이 법칙은 인텔의 사명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전자산업의 묵시적 목표가 됐으니까요. 40년이 지난 후 인텔의 수장인 무어도 자신의 예측 기사가 실린 잡지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인텔이 올해 출시할 예정인 제품을 내년으로 연기했습니다. 원래 2017년에 적용하기로 한 제품이 차일피일 2년이나 미뤄진 겁니다. 이런 지연이 이례적인 일이지만,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사실 무어의 법칙은 끊임없는 종말론에 시달렸고 실제로 장벽에 부딪혔지요. 한계에 달한 트랜지스터 크기는 투자와 운영비용이 올라 경제성을 상실한 겁니다.

컴퓨터는 2진법으로 동작합니다. 실리콘 소재로 만들어진 반도체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전자와 홀을 1과 0으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집적도가 증가하면 신호를 읽기 위해 많은 수의 전자가 필요하고 전력 소모와 발열량도 커집니다. 그리고 정보 간 거리는 간섭으로 무한정 가까이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반도체 기술과 소재개발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요. 예를 들면 전자 1개가 가지고 있는 양자역학 개념인 스핀만으로 1과 0의 신호를 구분할 수 있다는 양자컴퓨터의 등장입니다. 

무어의 법칙은 언제까지 갈까요?이미 많은 과학자는 2020년이 되기 전에 무어의 법칙이 끝날 것을 예견했고 설사 기한을 넘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종말을 맞을 거라고 합니다. 무어의 법칙은 그저 물리적 숫자일 뿐이니까요. 크기라는 물리적 시대가 종료하고 양자역학과 또 다른 법칙이 적용되고 소프트웨어가 빈자리를 차지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죠. 4차산업 직전에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입할 것이고 우리는 또 다른 위대한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세대 입니다. 

연구팀의 계획은 실패할까요?언젠가 무어는 자신의 법칙을‘머피의 법칙의 위반’이라고도 묘사했습니다. 그 연구원의 추측이 당분간은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신기하게도 불안한 무어의 법칙이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법칙과 관계없이 무어가 말한 대로 세상의 모든 것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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