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선(불어불문학) 교수

 

베트남과 축구, 둘 다 내게는 낯선 단어다.

군장을 하고 머나먼 땅으로 떠나는 ‘맹호부대 용사들’을 배웅하는 길에 동원되어 태극기를 흔들었던 것이 내가 겪은 베트남에 대한 첫 기억이다. △씨레이션 박스 △베트콩 △월남 패망 △고엽제 등의 단어와 함께, 처참한 월남전 사진이 내 기억 저장소에 있는 베트남에 대한 단편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한참 뒤에 우리의 용사들이 미국의 용병이었고,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땅에서 우리가 용서받기 힘든 일을 많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일의 태도와 비교하면서 일본의 뻔뻔함에 치를 떨면서도, 정작 우리는 베트남에 어떤 태도를 취했나?마음 한편에 부끄러움을 담아 두었을 뿐이었다.

나는 축구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도 오가며 접하는 매스컴 덕에 여러 이름과 영상들이 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요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박항서 감독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몰랐을 법하다. 하지만 그의 벗어진 머리 덕에 히딩크와 함께 환호했던 영상이 기억에서 떠올랐다. 그의 축구 인생 역전에 대한 브리핑도 쏟아진다. 국가대표 수석코치로 월드컵 4강 달성에 큰 공헌을 했으나, 직후에 맡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에서 부진한 성적 때문에 ‘3개월 만에 경질되었다’고. 박 감독이 어찌하여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맡게 되었고 얼마나 뛰어나 전적을 올렸는지 하는 성공 스토리보다, 나는 그가 패자로 보냈던 세월에 더 주목하게 되고, 베트남과 한국의 깊은 골을 메워 준 점에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박 감독이 처음부터 두 나라 간 우애의 가교를 짓는다는 큰 포부를 갖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진정성 있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간 노력에서 운 좋게 값진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 그 덕에 베트남에 대한 대한민국의 미안함을 민간 차원에서 조금이나마 만회하는 기회였으리라.

다시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2년 전 이맘때부터 시작한 촛불 혁명은 세계사에서도 드물게 피 흘리지 않은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촛불 혁명은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었던 만큼, 정권교체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산꼭대기에서 떨어진 커다란 돌을 다시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Sisyphus)가 시작점에 선 것과 같은 형국이다. 새로 집권한 세력이 1년을 넘긴 지금 박수받아 마땅할 점도 있지만, 안쓰러운 점도 답답한 점도 정말 화나는 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따뜻한 격려도, 날카로운 비판도, 매서운 질타도 모두 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 박 감독을 3개월 만에 경질해 버렸던 것과 같은 조급증은 경계하자. 시지프의 돌이 너무 깊은 심연에 처박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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