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7일 고현철 교수 3주기 추도식이 10·16기념관에서 열렸다. 예년에 비해 조촐하고 차분하게 치러졌으나 추도행사와 더불어 ‘고등교육 적폐청산과 대학 민주주의’를 주제로 추도학술대회가 진행되면서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대학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평범한 대학교수였던 고인의 비범한 죽음 이후 우리 사회와 대학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도래했다.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던 야만의 권력은 촛불혁명으로 무너졌고 시민들은 헌법에나 명시되었던 주권자의 힘을 실물로 보여주었다. 대학에도 변화가 있었다. 고 교수의 고귀한 희생에 힘입어 총장직선제를 끝내 지켜냈고 고인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 믿었던 대학은 무지하고 무도한 국가권력의 횡포를 버텨냈다. 대학 구성원들 역시 변하기 위해 분투했다. 돈으로 대학의 자유를 희롱하고 억압하던 권력을 묵인하고 방조하거나 혹은 동조하고 지지했던 우리는 무뎌지고 길들여진 정신을 벼리며 더는 부끄럽지 않고 비겁하지 않기 위해 진력했다. 그러니 이 변화를 추동한 고 교수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그의 죽음에 빚지고 살아남은 우리는 변화를 중단 없이 이어갈 책임이 있다. 역사가 증험하듯이 제도가 민주주의를 담보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는 부단한 실천 속에서만 실재한다. 하여 민주주의는 완료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진행 중이며 목숨과 맞바꾼 고인의 날선 외침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다시 한 번의 추도식을 치르며 우리는 재차 묻는다. 대학의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각종 재정지원 사업을 동원해 대학을 길들이고 통제하려는 교육부의 전횡이 중단되거나 완화된다고 해서 대학의 민주화가 실현되는 것은 아닐 터다.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더 근본적인 적은 외압이 아니라 외려 대학 내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학 안의 권력은 위기를 과잉생산하고 선의와 효율을 명분 삼아 비판을 수구적 비난으로 폄훼하고 정당한 항의를 묵살하며 토론을 박탈하기에 급급한다. 그렇듯 독선과 독단으로 밀실 속에 스스로를 가둔 권력은 대학 구성원들을 변화의 주체로 보기보다 개혁의 대상으로 강등하며, 대화하지 않고 명령하고, 대학을 민주주의의 보루가 아닌 전체주의의 난장으로 훼손한다. 지난날 효원문화회관 건립이나 총장직선제의 폐지 결정은 이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불행한 전례들이었다.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망각하고 부단히 벼리지 않으면 반드시 무뎌질 터이다. 과거를 성찰하지 않으면 실패한 과거는 거짓말처럼 회귀할 것도 분명한다. 최근 교육부는 대학을 악의적으로 길들이고 획일화해온 기존의 목적성 재정지원사업 대신 대학이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미흡하긴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대학 역시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허나 그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교육부나 자본이 아니라 대학이며 더 정확히는 대학 구성원들이어야 한다. 아울러 대학본부는 대학구성원들에게 개혁을 하달하는 위치가 아니라 최선의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자리다. 그 본분을 저버리고 권력으로 군림하려 들 때 대학의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다시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대학의 민주주의는 우리의 절실하고 실천적인 과제이며 지금, 이곳에서도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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