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지하철 시청역 승강장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줄을 지어 열차 문턱을 반복해 드나들었다. 이는 일 년 전 휠체어 리프트 추락으로 희생된 한경덕 씨를 추모하고 안전한 승강기 설치를 촉구하는 시위였다. 20분 남짓의 시위에 열차 출발은 지연됐다. 현장에 있던 이들은 불만을 표출했다. 시위대가 자신들만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남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라 불안했다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상상만 해도 시험에 지각할까봐 조마조마한 감정이 들었다. 필자도 분명 당시 상황에 처했다면 불편하고 난처했을 것이다. 필자는 평소 학교 가기 전날, 등교 시간에 맞게 계획해둔 대로 아침에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이것이 생활 습관이기에 지체된 시간은 지대한 타격이다. 사실 늑장 부리다가 오 분 정도는 지나가도 괜찮다.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치려 할 때 달려가 버스를 세우거나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 몸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이를 놓치는 경우, 강의실을 향해 달려가서라도 아슬아슬하게 출석 체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등교 시간에 지체된 20분은 전날의 계획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20분의 시간이 하루 일정에 가져올 영향은 매우 큰 부분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휠체어 장애인들이 이동 시 느끼는 불편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한 번의 외출에도 수많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일반 버스가 아닌 저상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저상버스 배차 시각에 맞추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버스에 오르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리프트가 작동될 때까지 기다리고 마련된 경사로를 따라 휠체어를 끌어야 하는데, 이때도 기다리는 일부 시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버스가 정류장 안쪽까지 들어오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콜택시도 대기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도시철도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다. 높은 위치에 있는 역을 이용하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찾아 휠체어 바퀴를 굴려야 한다. 늦더라도 달리거나 서두를 방법은 없다.  

시위의 계기가 된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도 이동 시 불편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려다 발생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사에서 한 씨는 계단 옆 리프트를 이용하려 했다. 리프트 탑승을 위해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다가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버튼의 위치는 계단 바로 앞에 위치했고, 이는 한 씨가 미리 대비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의 순간을 누군가는 목숨까지 걸어야 누릴 수 있었다. 이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자 시위가 진행된 20분이 다른 의미로 불편해졌다. 시간이 지체되는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불만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자 찝찝한 감정으로 변한 것이다. 휠체어 장애인들이 느껴온 고초를 외면했다면 출발 시각이 지체됐다며 불만을 품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쩐지 이 찝찝한 감정이 반갑다. 20분의 시간은 필자로 하여금 그들을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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