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라고 하면 보통 전문적인 영화인이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서 벗어나 청년들의 축제로 탈바꿈시킨 영화제가 있다. 바로 ‘부산청년영화제’다. <부대신문>은 제1회 부산청년영화제에 참여해 나흘간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보았다. 

부산청년영화제(Busan Film Festival For Youth, BFFY)는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삶과 고민을 이야기해보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기획자인 △백지영 씨 △최수영 씨 △김찬우 씨 △김정우 씨 역시 모두 청년이다. 백지영 씨는 “영화제 기획자들도 청년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를 해봤지만 결국 뚜렷한 답을 내지 못했다”라며“그래서 다 같이 그 답을 찾는 과정을 영화제의 주제로 정했다”라고 말했다. 

 

부산청년영화제의 첫째날 관객들이 칵테일과 음료 등을 마시며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다

 

 

틀 깨는 영화로 포문 열다

지난달 15일 부산청년영화제가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뚫고 모퉁이 극장에 도착하니, 은은한 조명과 ‘제1회 부산청년영화제’라고 쓰인 붉은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극장 안 일곱여 개의 테이블에는 먹음직스러운 빵과 팝콘이 놓여있고, 한 켠에는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간이 칵테일 바가 마련돼 있다. 종종걸음으로 모퉁이 극장을 누비던 백지영 씨는 “비가 오면서 장소가 변경돼 정신이 없다”라며 “궂은 날씨 때문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오셔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저희가 비만큼은 피해 보고자 이름을 비피(BFFY)...”. 우중충한 날씨를 아쉬워하는 김정우 씨의 농담으로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개막식이 시작됐다. 

이후 개막식의 하이라이트 ‘흑역사의 밤’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흑역사의 밤은 미완성된 작품이나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작품을 상영하는 행사다. 잘 만든 작품을 상영하는 보통의 영화제 방식에서 탈피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에 서 있는 청년의 특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청년의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다뤄 아직 날개를 펴지 못한 청년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독특한 성격으로 개막 전부터 관객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배주연(동래구, 18) 씨는 “흑역사라고 하니 친근하게 느껴지고, 남들의 흑역사를 볼 기회는 흔치 않기에 궁금하다”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라기도, 우스꽝스러운 내용에 크게 웃기도 했다. 

상영이 끝나고 흑역사의 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영화학과 학생이 조별과제로 찍었던 영화 △촬영 도중 난항을 겪어 기획 의도가 바뀐 영화 △일주일 만에 급하게 완성한 영화 등 흑역사가 탄생한 배경은 다양했다. 이외에도 감독들에게 영화 장면과 주제 등에 대해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작품에 시나리오가 있었냐’는 질문이 나와 모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관객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는 편인데 이 영화들을 보면서 그런 강박관념을 내려놓게 됐다”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권지원(동구, 30) 씨는 “흑역사 작품을 만들었던 감독들이 영화 분야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고 있더라”라며 “하고 싶은 걸 하는 청년들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영화들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청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다

둘째, 셋째 날은 각각 청년에게 가장 맞닿아있는 ‘성공’과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와 관객 프로그램이 기획됐다. 최수영 씨는 “많은 고민 끝에 청년의 솔직한 면에 집중해보는 것으로 결정했다”라며 “그래서 성공과 사랑 중에서도 성공을 위해 뭔가 포기하는 것과 찌질한 사랑을 주제로 다뤄봤다”라고 취지를 전했다. ‘성공’ 주제에서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프로그램 내내 관객들은 다른 사람의 발표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글을 쓰고 싶다고 발표했던 홍슬민(양산시, 33) 씨는 “저의 꿈과 관련된 얘기들이 낯설 수 있지만 많은 분이 공감을 해주셔서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사랑은 원래 찌질한거야’라는 주제에서는 시간별로 썸, 연애, 이별 테마의 영화가 상영됐다. ‘사랑’과 관련된 관객 프로그램은 오픈 채팅방으로 진행됐다. 익명의 관객들이 채팅방으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의 찌질했던 연애사를 공유했다. 백지영 씨는 “관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내성적인 사람들의 의견을 이끌어내고, 민감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눌 방안으로 오픈 채팅을 고안했다”라고 밝혔다.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매일 문자로 날씨를 알려주었다’, ‘썸남에게 기프티콘을 선물했다가 이후 다른 사람과 교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선물발송을 취소했다’ 등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채팅방에 쏟아졌다. 전회윤(남구, 20) 씨는 “익명이라 마음 편하게 프로그램에 임할 수 있었다”라며 “찌질한 사연을 올렸는데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아 좋았다”라고 호평했다. 

스포트라이트 뒤 일꾼들의 뒷담화

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부산청년영화제 역시 비피더스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비피더스(BFFY+us)는 부산청년영화제를 뜻하는‘BFFY’와 ‘us’를 합친 말로, 부산청년영화제의 자원봉사자다. 포스터와 각종 부스 등 부산청년영화제에서 비피더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기획자들은 자원봉사자의 처우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이는 ‘안티자봉’(Anti-자원봉사자)으로 이어졌다. 자원봉사자 뒷담화 안티자봉에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이들이 각자 자신의 경험을 풀어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최지현(안성시, 24) 씨는 “스태프가 반말이나 명령조로 대하는 경우가 잦았고, 자원봉사자 휴게실이 따로 마련돼있지 않아 조그만 공간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자원봉사자는 배려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라고 토로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자원봉사자 ‘지프지기’의 실상을 다큐멘터리로 고발하는 이도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차량지원팀과 영사지원팀 지프지기들은 하루 8~12시간을 일하면서도 교통비와 숙식비를 다 받지 못해 사비로 지출해야 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제 자원봉사자의 처우 개선책을 정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 과정에서 자원봉사자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 등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최지현 씨는 “영화제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만 이야기되던 문제를 공론화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라며 “안티자봉을 시작으로 이런 자리가 더 많이 마련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열띤 토론을 통해 문서화된 개선안은 국내 여러 영화제에 발송될 예정이다.

부산청년영화제는 ‘청년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는 신선한 주제와 일반 청년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기획자 역시 영화 전공자가 아닌 만큼 보통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영화제를 만들고자 했다. 최성은(사하구, 24) 씨는 “영화인들만의 축제가 아닌, 청년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한다는 기획 의도가 신선하다”라고 말했다. 비피더스 김지윤 씨는 “청년이 자유롭게 만드는 영화제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비피더스로 참여했다”라며 “영화제 하나 하나 함께 만든 것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때마다 뿌듯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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