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환송 행사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가 울려 퍼졌다. 남북한 간의 화해와 평화를 기약하는 자리에서 왜 발해를 꿈꾸는 노래가 나왔을까? 더욱 흥미로운 것은 노래를 들어 보면 ‘발해’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소망하는 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라고 시작하는 노래는 발해가 아니라 통일을 꿈꾸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하던 1994년,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찍었다. 노동당은 북한을 통치하는 조선노동당을 말한다. 철원은 38선 이북 지역이기 때문에 6·25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고, 노동당사는 그때 세워진 건물이다. 남한에 남아 있는 북한의 통치 기관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앞에서 통일을 꿈꾸는 노래를 불렀다.

그렇다면 도대체 발해와 통일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바로 여기에 발해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평행이론이 깃들어 있다. 발해는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발해의 영토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걸쳐 있었을 뿐 지금의 남한 땅으로는 내려오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을 우리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발해는 우리 역사 속의 나라가 아니다. 자연히 통일을 꿈꾸지 않으면 발해도 꿈꿀 수 없다.

발해가 남한까지 내려오지 않았다면 그때 남한에는 어떤 나라가 있었을까? 통일 신라였다.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국 통일을 이룩했지만,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만주와 북한의 상당 부분을 당나라에 내주었다. 그러자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고 옛 고구려 땅에서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를 세웠다. 그 나라가 바로 발해였다. 이것이 우리 역사에서 남북국 시대라고 불리는 시대의 시작이다. ‘남북국’이라는 호칭은 신라가 발해를 ‘북국’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우리 민족이 남과 북에 각각 다른 나라를 세운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리고 130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남북한의 분단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북국과 남북한의 평행이론은 한 민족이 남북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남북한이 그래 온 것처럼 남북국도 치열하게 경쟁했다.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인 당나라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다. 신라와 발해도 유학생을 보냈다. 당나라는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빈공과라는 과거 시험을 치렀는데, 처음에는 신라 유학생이 발해 유학생보다 성적이 더 좋았다.

그러다가 9세기 말에 발해의 오소도가 신라의 이동을 물리치고 장원을 차지했다. 그러자 신라에서는 난리가 났다. 신라의 명문장가로 소문난 최치원이 신라의 수치라며 길길이 뛰었을 정도였다. 세월이 흐른 뒤 치러진 빈공과에서는 신라의 최언위가 오소도의 아들 오광찬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 이번에는 오소도가 나서서 당나라 조정에 두 사람의 순위를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당나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라와 발해는 당나라의 외교 문서에 서로 자기 나라의 이름이 먼저 나오도록 하려고 볼썽사나운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남북한도 남북국을 이어받아 외교,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냉전 해소 이후 남한의 우위가 뚜렷해지기 전에는 수교 국가의 숫자를 놓고도 경쟁했고, 운동 경기에서 만나면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싸웠다. 그래도 남북국은 진짜 전쟁만은 하지 않았는데 남북한은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렀다.

남북한과 남북국의 평행이론이 계속되는 것은 민족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우는 일이다. 냉랭하게 지내다가 서로 다른 나라에게 멸망당한 남북국의 최후까지 닮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극한 대립 끝에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잡은 남북한이 이 저주받은 평행이론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