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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 우리보다 30분이 늦다고?
  • 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27 03:04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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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40%를 기록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기억하시나요? 제목에는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과 태양이 왕을 의미하는 은유적 상징이 숨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무려 190번의 일식을 기록했습니다. 왕을 의미한 태양의 빛을 잃은 일식을 하늘의 경고로 여겨 왕은 빛을 되찾을 때까지 소복을 입고 기다렸습니다. 예보에서 14분 24초를 틀려 경을 치른 신하가 있었다는 기록은 권력자가 일식에 민감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조선의 시간은 중국의 책력을 사용한 계보를 이어 왔지만, 북경과 한양은 위치가 다릅니다. 당연히 일식의 시간도 달랐겠지요. 세종대왕은 조선의 시간을 찾으려 했고 앙부일구라는 해시계를 만들며 20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한양을 기준으로 조선의 시간을 완성합니다. 새로운 조선 책력에 맞춰 계산한 날짜인 1447년 8월 1일 신정 3각 50초에 예보한 대로 일식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우주에서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한쪽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무엇인가에 마디를 새기고 그 마디를 세밀하고 정교하게 다듬어 갑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고대 문명부터 나라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정했습니다. 여기에는 시계의 역사가 맞물려 있지요. 기원전 오벨리스크의 해시계부터 조선의 앙부일구, 17세기 유럽에는 진자시계가 있었고, 20세기에 수정진동자를 가진 정밀한 전자시계가 등장합니다. 세상을 관통하는 시간은 하나인데 인류가 만든 시계는 점점 정밀해졌음에도 어느 하나도 같은 시간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라디오와 TV에서 정각을 알리는 시보를 송출했습니다. 이 신호를 듣고 사람들이 각자의 시계를 맞췄습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100만 년에 1초도 오차가 나지 않는 원자시계와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적용된 인공위성의 GPS로 공간과 시간이 동기화됩니다. 외국에 나가서도 휴대 전화를 열면 GPS로 위치를 찾아 원자시계와 동기된 시간이 나타납니다. 시간은 경도이고 세계 지도에 그어진 경도선이 바로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남북평화회담이 있던 날에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다른 겁니다. 평양과 서울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먼 경도 위치도 아니고 같은 경도 공간에 있으니 시간이 같은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보다 30분 늦게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08년 세계의 시간과 동기화를 하며 표준시를 도입했지요. 영국 그리니치에 있는 본초자오선에서 8시간 30분 이른 시간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와 제3공화국 시절에 GMT +9:00로 바뀐 겁니다. 북한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시계를 다시 대한제국 시절 위치로 돌렸던 겁니다. 시간의 전선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제국주의의 야망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가 버무려져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과학이 동력이 됩니다. 19세기 후반 아인슈타인은 특허국에서 시계 동기화 특허 업무 처리를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20세기 초 이론물리학의 업적은 이런 시간 동시성의 고민이 토양으로 된 것입니다. 수많은 과학자가 애를 써서 동기화한 시간을 마음대로 30분씩 미뤄도 될까요?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것이고 시간은 권력입니다. 전 세계는 마치 정밀한 움직임을 보이는 커다란 시계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 각국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와 힘으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시간 변경선을 보면 들쭉날쭉하고 시간은 결국 인류가 만든 권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시간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마치 신의 전유물 같은 시간을 인류의 눈앞에 가져왔음에도 시간의 주권은 오롯하게 인류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현대인은 늘 시간이 모자른 타임푸어로 살며,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그저 조각난 시간에 자신을 올려놓고 짧은 위안을 받지만 어느 순간 거대한 힘에 강요되어 몸은 일터에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자신이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은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하고 자신만의 시간대를 가지고 살아보고 싶습니다. 

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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