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책 속에서 작가와 등장인물들과 호흡하며 만나는 지식들이 좋았다. 그러나 머릿속 책들은 좀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책의 내용을 방관하며 읽을 뿐이라 내 생각이 별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만의 생각을 갖기가 어려웠고, 이를 바탕으로 내 얘기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에 항상 한계를 느껴왔다. 이 와중에 신문사에 들어오려고 마음먹었을 때 책이 아닌 현실에서 ‘많은 경험’을 할 것이라 그저 기대에 들떴다. 실제로 수습 첫 3주는 마냥 재미있었다. 의지가 찬 채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니, 사안에 대한 생각도 생기고 글을 풀어나갈 때도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책에서 벗어나 진짜를 만났다는 생각에 행복했던 것도 잠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어느 순간 재미와 체력이 동나면서 나약해졌다. 의무감에 한 주를 보내고, 기사를 쓰려 모니터 앞에 앉으면 고통스러웠다. 분명히 취재를 했으니 들은 바는 많은데도 나는 사안에서 겉돌았다. 혹시 내 기사가 잘못 쓰여 누군가 피해를 볼까 걱정돼 문장 하나를 쓰기가 힘들었다. 취재를 하거나 기사를 쓸 때 내 생각을 갖지 못해 초래한 결과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겨우 기사를 써내면서 ‘이게 정말 나인가’하고 멍해졌다. 이렇게 쓰인 기사를 보면 보람보다는 자책감이 더 느껴졌다. 책을 벗어나 마주한 현실에서도 나는 다시 방관자가 됐다.

그렇지만 누군가 ‘신문사 생활이 의미가 없느냐’고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 전환점이 돼줬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한편의 책에 비유한다면 신문사 생활은 기승전결의 ‘전’에 해당한다. 이는 내가 달라져서라기보다는 나의 한계를 깨는 방법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움츠러들어있을지라도 수습기자가 됐던 처음을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내 한계를 극복한 적이 있었다. 책이 아닌 현실에서 세상을 만났던 즐거웠던 경험은 내가 능동적으로 임했기에 만들어졌던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능동적으로 취재해 알아냈던 것들은 단편적 지식과 달리 온전히 내 것이 됐다. 능동적인 태도로 내 한계를 깰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자, 마음을 다잡으면 내 한계를 다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생겨났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 ‘전’은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들이 모여 결말을 만든다. 내 인생의 결말에는 진한 여운과 의미가 남았으면 한다. 신문사에서의 힘들지만 진한 경험이 내 인생이라는 책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젠 책을 읽을 때처럼 나를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로서 신문사라는 한 챕터를 다시 채워야겠다. 내가 주인공인 책이니만큼 낙수라는 의미 있는 장면에서 방관만 해서는 안 되니까. 단지 의무감이 아니라 나의 의지로 기획을 짜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나의 모습을 써내려가야겠다. 능동적인 모습의 내가 되겠노라 의지를 다지며 수습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