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감독 전고운 | 2018)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에 이어 꿈과 희망을 모두 포기하는 N포세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이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익숙해져 버렸다. 사회가 규정한 ‘현재 또는 미래의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러나 여기, 영화 <소공녀>는 과감히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확고한 취향과 행복을 추구하는 미소(이솜 분)의 투쟁기를 그리고 있다.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일당 사만 오천 원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덩달아 오르는 집세와 담배값에 생활비를 줄여보려 가계부를 골똘히 쳐다본다. 그러다 문득 어느 한 곳에 물음표를 단다. 백발을 막는 한약도, 담배도, 위스키도 아닌 ‘집세’ 아래에. 그날부터 미소는 집을 나와 과거 대학 시절 밴드 멤버들을 찾아간다.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고자 몸을 혹사시키는 문영(강진아 분) △아파트 대출금 이자로 고통받는 대용(이성욱 분) △부잣집에 시집갔지만 남편과 시댁 눈치만 보는 정미(김재화 분) 등 이들 모두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안정된 삶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안정된 삶’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현재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이들은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이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는 것도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웹툰 작가의 꿈을 접고 생명수당이 포함된 월급을 저축해 밀린 학자금 대출을 갚기로 선택한 것이다. 담배와 위스키처럼 세상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그의 ‘배신’에 미소는 충격을 받는다. 안정된 삶 대신 취향을 선택한 이는 이제 미소 혼자뿐이다.

안정을 선택한 친구들과 남자친구, 이와 달리 취향을 선택한 미소 모두 불확실한 미래를 지녔다는 사실은 같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미소는 자신만의 취향을 고수한다. 이는 최근 젊은 세대의 가치관인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추구를 보여준다. 오늘 당장 어디에서 밤을 묵을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미소는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이들에게 미소는 좋게 표현해 ‘유니크’한 사람이다. 안정적인 삶을 상징하는 ‘집’을 포기하고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한 미소를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다. “스탠더드는 아니지”, “나는 네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라며 한심하게 바라보거나 연민한다. 취향만 있는 미소와 자신을 비교하며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는 미소의 외침은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그러나 ‘집’이 있다고 미소보다 행복한 삶인 것일까. 미소의 방문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오히려 이들이다. 미소는 우리가 바라는 삶을 실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잊고 지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상기하기도 한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긴 백발을 휘날리며 담배를 태우고 위스키를 마시는 미소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우리는 이렇듯 미소를 통해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안정된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우리는 정말 행복한 것일까, 라고.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