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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스승에게 부산대학교란?
  • 곽령은·추예은 기자
  • 승인 2018.05.13 08:43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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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5일) 우리 학교는 72주년 개교기념일을 맞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학교는 내·외로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를 학생 때부터 교수로 퇴직하기까지 지켜본 이들이 있다. 1996년부터 21년간 고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2016년에 퇴임한 신경철 교수, 1984년 해당 기계공학과 교수로 34년간 재직한 뒤 올해 퇴임한 김덕줄 교수다. <부대신문>은 이들이 우리 학교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신경철 교수님,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1972년에 우리 학교 고고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 우리 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다가 경성대학교에 교수로 처음 취임해 10년 동안 재직했다. 1996년부터 21년 동안 우리 학교 교수로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016년에 정년퇴임했다. 

△부산대학교에서 경험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면서 추억이 많이 쌓였다. 기존의 강의는 교수의 공식적인 발언에 불과하며 학생 개개인의 지도가 불가능하다. 특히 인문학은 교수와 학생들 간의 대화가 중요한데, 그래서 편한 자리에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 노력했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큰 용기를 얻는다. 나 또한 학생들이 현재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과거 잘못된 정부 정책을 저항으로 막아냈던 순간도 기억이 난다. 1998년에 정부가 ‘학부제’를 전국에 도입하려고 했다. 이는 세부 전공을 통·폐합해 학생들이 다양한 전공을 경험한 뒤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다. 그러나 인기학과만 남고 순수학문은 도태될 위험이 있다. 다른 학교들이 전부 학부제를 실시할 때, 우리 학교 인문대학은 학부제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저항했다. 이에 정부가 결국 학부제를 폐지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대학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려 총장 간선제를 도입했을 때도 전국의 대학 중 유일하게 우리 학교만이 직선제를 고수했다. 교수들과 7개월 간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한 것과 故 고현철 교수님의 숭고한 희생으로 직선제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렇듯 학생들을 포함해 교수님들과 함께 공부하고 교우를 맺고, 우리 학교의 역사적 사건마다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며 행복이었다.

△오랜 시간 재직하시면서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흐름을 경험하셨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비해 현재 우리 학교가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현재 대학생들은 과거보다 시대의식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대학생이란 예비 지식인이기에 시대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6월 항쟁이나 10.16 부마민주항쟁처럼 정부의 독재나 반민주 체제에 우리 학교가 가장 먼저 저항하고 시위의 물꼬를 트곤 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과 저항의식이 예전보다 약해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교수님께 부산대학교는 어떤 의미인가요?

흔한 표현이지만, 부산대학교는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의 격동과 격변기를 이곳에서 경험했고 함께 이겨나갔다. 특히 학생 때는 학교에 다니면서 당시 사회의 현상과 모순을 자각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우리 학교가 발전하기 위해서 학내 구성원들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학교는 과거 독재정권에 맞섰던 빛나는 역사가 있다. 따라서 우리 학교 구성원이라는 것에 충분한 자긍심을 지닐만 하다. 이를 바탕으로 대사회적인 문제에 책임의식을 느낄 필요가 있다. 우리 학교의 본연의 역할은 지역사회를 대변하고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를 잊지 않을 때 우리 학교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김덕줄 교수님.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 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학생 때는 공과대학 학생회장으로서 활발히 활동했고, 1984년부턴 우리 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로 34년간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 시절도 우리 학교에서 보내셨는데요. 대학생 때 우리 대학은 어땠나요?

지금보다 학교 분위기가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학생회 활동을 해서 동아리를 하지 않았지만, 동아리들이 아주 끈끈하게 연결돼있었다. 선후배들끼리 돈독하고, 동아리별로 활동도 활발했다. 또 교수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다. 요즘은 서로 바빠서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지도 교수와 함께 산행을 가기도 하고, 산성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온갖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적으로는 소요가 많았다. 부마항쟁 때는 군인들이 학교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있고, 정문에는 보초가 서 있기도 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휴강하는 경우가 많아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서점에 가면 맨 앞부분에만 필기가 돼 있는 책들이 허다했다. 뒤로 갈수록 잦은 휴강으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도 시험을 치다보니 수업을 듣지 않은 부분은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에 오랜 시간 있으면서 크고 작은 변화를 보셨을 것 같은데요. 과거에 비교해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요?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예전보다 학생들이 자긍심과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이것이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지는 것 같다. 본부 보직을 맡으면서 학생들의 적성을 찾아주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시행해봤지만 다른 학교에 비해 참여율이 낮았다. 그리고 칠판에 일일이 필기해 수업하던 과거와 달리 학교시설이 개선되면서, ppt 등으로 많이 수업한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따로 필기를 하지 않고 요약된 강의 자료만 눈으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캠퍼스가 많이 바뀌면서 학생들이 인식하는 학교의 상징물도 달라진 것 같다. 옛날에 우리 학교의 상징은 무조건 무지개 문과 독수리탑이었다. 우리 학교 엽서에도 그 상징 사진이 있어 졸업생들은 이를 다 알 것이다. 친구들과 어디서 만날지 약속할 때 항상 무지개문과 독수리탑을 얘기하곤 했다. 그때는 현재 정문 쪽에 논밭이 있었고, 무지개문과 독수리탑이 있는 곳이 정문이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학생들이 많이 다녔다. 또 지금은 사라졌지만 정문에 있던 시계탑도 주요 약속장소였다. 그런데 지금의 학생들은 이 세 곳을 우리 학교 상징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부산대학교가 발전하기 위해서 어떤 점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우선 우리 학교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특히 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우리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나 자부심을 잘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도전 정신을 가지고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신감 없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 모두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대학은 인재를 키우는 곳이다. 인재를 키운다는 것은 나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교수들과 교직원들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를 키운다는 마음으로 지지대 역할을 해주고, 학생들은 그 지지대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온전히 뿌리를 내린다면 더 이상 지지대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재촉하지 말고 결실을 볼 때까지 묵묵히 맡은 바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경철(고고학) 교수님

김덕줄(기계공학) 교수님

 

곽령은·추예은 기자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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