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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역사의 흐름을 타고 변화하다
  • 곽령은 기자
  • 승인 2018.05.13 08:01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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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드리는 교회 안. 예배시간이 되자 웅장한 악기연주와 함께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높인다. 합창에 이어 누군가는 감정을 담아 가사를 노래하기도, 이야기하듯 읊조리기도 한다. 이들의 노랫소리에는 성서의 구절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칸타타는 오라토리오, 오페라와 함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성악곡으로 꼽힌다. 오라토리오와 오페라는 △아리아(선율을 아름답게 부름) △레치타티보(대사 내용에 중점을 둠) △성악 앙상블 △합창 △오케스트라 곡들로 구성된 극음악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오라토리오의 가사는 주로 성서를 바탕으로 하고, 무대장치나 연기행위 없이 연주된다는 점에서 오페라와 차이가 있다. 칸타타는 이러한 오라토리오와 비슷하지만 작품의 길이나 연주자 수에 있어 규모가 더 작다.

칸타타는 CANTARE(노래하다)라는 이탈리아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원래 특정 형식의 노래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었다. 칸타타의 기원은 비교적 가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성음악 모노디이다. 예술에 관심 있는 귀족들의 모임인 피렌체의 카메라타 회원들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화음을 만들어내는 악기로 독창노래를 반주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칸타타는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초기 이탈리아 칸타타는 사적인 사교모임에서 연주하는 작품이었다. 이후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칸타타가 등장하는데, 가사의 내용에 따라 전자를 실내 칸타타, 후자를 교회 칸타타라고 부른다.

실내 칸타타는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이탈리아에서 발전했다. 무대장치나 의상 없이 실내에서 연주되며, 대중화된 오페라보다 소수의 청중을 위한 장르였기 때문에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17세기 중엽, 다악장 형식의 독창 칸타타가 확립됐고, 18세기 전반에 이르러 △서곡 △레치타티보 △아리아를 반복하는 이탈리아 칸타타의 정형이 완성됐다.

이러한 칸타타는 다른 나라의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 실내 칸타타를 가리키던 칸타타는 18세기 초부터 독일 종교 음악에도 적용됐다. 오페라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실내 칸타타와 달리 교회 칸타타는 성서를 비롯한 종교적 내용의 가사로 이뤄진다. 이는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시간에 사용됐다. 바흐가 대표적인 작곡가로, 현재 남아있는 그의 교회 칸타타는 200여 곡이다.

독일의 교회 칸타타는 루터 종교 개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신부였던 마틴 루터는 부패가 극심했던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루터는 음악을 통해 개혁 정신을 전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새로운 교회의 찬송가인 ‘코랄’을 작사, 작곡했다. 대부분의 교회 칸타타는 이 코랄을 기본으로 한다. 

궁정과 교회에서 음악 작업을 했던 바흐의 칸타타 작품 역시 코랄을 배경으로 했다. 바흐 칸타타는 일반적으로 합창-레치타티보-아리아-레치타티보-아리아-코랄의 순서로 전개된다. 아리아는 당시 오페라의 A-B-A 다카포 형식을 따르고 있었다. 이는 A와 B만 악보에 기록하고, 다시 되풀이되는 A에 특별한 기교와 장식을 넣어 화려하게 꾸미는 형식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코랄과 이탈리아 칸타타를 협주적인 방식으로 통합한 것이 바흐 칸타타의 특징이다.

독일에 전파된 교회 칸타타는 종교적 색채를 짙게 드러낸다. 이는 종교 음악이 성행했던 르네상스의 시대가 막을 내린 후 시작된 바로크 시대에 성행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정희영(동의대 음악학) 교수는 “바로크 시대라는 같은 시기에 오페라는 세속적인 경향을 가진 데 비해, 칸타타는 르네상스의 종교 성악의 맥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곽령은 기자  emily38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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