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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외면했던 그들의 절규] 조작된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
  • 백지호 기자
  • 승인 2018.05.13 06:35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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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 22일.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던 김기춘이 '학원침투 간첩단사건'을 발표하고 있다

판사가 재판봉을 세 번 내리쳤다. ‘판결 선고,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41년 만의 무죄 확정이었다. 대학교 3학년이던 청년들은 어느새 노인이 됐다.
지난달 19일 우리 학교 동문인 △김정미(철학 73) 씨 △노승일(정치외교학 73) 씨 △박준건(철학 73) 씨가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방조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들은 재일동포 학원 간첩단 사건, 일명 ‘11.22’ 사건으로 20대에 2~3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이 판결을 통해 그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오점인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그들은 어떻게 현대사의 비극에 휘말리게  됐을까?

정권의 유지 수단으로 이용되다

군사독재정권은 일본에서 조국으로 유학 온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유학생들은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알지 못했고, 우리나라의 문화와 언어에 미숙하다 보니 군사독재정권의 표적이 됐다. 특히 가족과 떨어져 있어 불법 체포 및 구금이 용이했다는 점도 그들이 이용된 주요인이었다. 당시 정권은 국민의 정권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재일동포 간첩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에는 1970~80년대 간첩 사건이 966건이고, 그중에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 사건은 319건이라고 명시돼있다.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은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1971년 4월에 처음 발생했다. 4월 27일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김대중 후보를 94만여 표 차이로 이기고 당선된다. 당시 기권표가 309만여 표임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박정희 대통령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대통령 3선을 위한 전략으로 선거 직전 4월 20일에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을 발표한다. 당시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재일교포 서승, 서준식 형제를 학원 간첩단으로 체포한 것이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취조를 받던 서승은 간첩 조작에 항거해 난로의 기름을 몸에 끼얹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들이 당한 가혹한 고문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기도 했다. 형제는 십수 년의 징역을 보내고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11.22사건 우리 학교도 피해갈 수 없었다

‘11.22사건’은 전국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간첩단 사건이다. 1975년 11월 22일 중앙정보부는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검거를 발표했다.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중앙정보부 김기춘 대공수사국 부장은 ‘모국 유학생 북괴 간첩이 한국 사회의 자유화와 민주화에 편승해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국가변란을 꾀했다’며 대학생 21명을 검거했다. 이 중에는 재일동포는 물론, 그들과 친했던 △서울대 △우리 학교 △고려대 등의 재학생이 반공법 위반, 간첩방조죄 등으로 체포됐다. 당시 일본에서도 이 사건이 크게 보도됐고, 재일동포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우리 학교에서도 ‘11.22사건’이 있었다. 재일 교포 유학생이었던 김오자(사학 73) 씨를 비롯해 △김정미(철학 73) 씨 △노승일(정치외교학 73) 씨 △박준건(철학 73) 씨 △하일민(철학) 교수 등이 반공법 위반 등으로 검거된 것이다. 1975년 10월 10일에 김오자 씨가 정부를 비판하는 전단을 살포하면서, 김오자 씨와 알고 지내던 인물들이 대거 체포됐다. 그들은 10월 17일과 18일에 중앙정보부 대연동분실로 연행돼 서울로 압송됐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고문과 수사관들의 폭언이 자행됐다. 결국 김오자 씨는 1차 사형, 2차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오자 씨는 징역
9년 뒤에 가석방됐고, 김정미 씨는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방조죄로 3년 6개월의 징역을, 노승일  씨(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와 박준건 씨(반공법 위반)는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국가의 만행, 세상에 밝혀지다

재일동포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0년 7월, ‘11.22사건’의 피해자 김동휘 씨의 재심 청구를 시작으로,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의 판결에 대한 재심이 연이어 청구된다. 사법부는 피해자들이 간첩으로 조작됐다는 판결을 내렸다. 불법체포와 구금, 고문이 허위 진술을 받아내는데 사용된 것이다. 현재 34명의 재일동포 간첩 사건 피해자가 청구한 재심에서 32명이 무죄를 확정받았다.
가장 최근에는 우리 학교 동문의 재심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19일 서울고등법원은 김정미 씨와 노승일 씨, 박준건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공법 위반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그들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도움을 요청하고, 2014년부터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을 준비해왔다. 2014년 9월 30일 재심청구를 시작해 약 4년여 만에 그들의 무죄가 확정됐다. 노승일 씨는 “무죄 판결이 났지만 믿기지 않는다”라며 “지난 40여 년의 아픔은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백지호 기자  kkin4u0@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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