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직전, 1590년, 일본에 보낸 통신사가 돌아와 임금께 보고드렸다. 이때 ‘저들의 괴수인 풍신수길이라는 자의 됨됨이가 어때 보였느냐’는 선조 임금의 물음에 정사 황윤길은 ‘눈빛이 부리부리하고 지략이 뛰어나 보였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한 반면, 부사 김성일은 ‘생김새가 쥐와 같아서, 두려워할 인물이 못됩니다. 전쟁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반대되는 대답을 했다. 이렇게 엇갈린 평가 때문에 임진왜란에 대한 대비에 충실하지 못했고, 그 결과 초전에 참패를 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유성룡은 훗날 김성일을 보고 ‘그때 왜 그런 소리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김성일은 ‘곧이곧대로 이야기했다가는 조정이 소란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질까 봐 그랬다’고 변명하더라고 <징비록>에 적고 있다. 하지만 그리 곧이들리는 변명이 아니다. 위기가 눈앞에 닥친 상황이라면 당장 소란해지더라도 국론을 모아 대비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낫지, 잠시 평안을 누리다가 큰 곤욕을 치르는 게 낫겠는가?김성일이 동인이라서 서인인 황윤길이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말하고 싶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완전히 납득이 되지는 않는데, 그랬다가 전쟁이 나면 자신과 자신이 속한 동인이 모두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할 것을, 그처럼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자’며 섣불리 딴소리를 했을까?사실 일본에 남은 기록을 보면 풍신수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키가 유난히 작고 얼굴 모양도 쥐를 연상케 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업신여기기 일쑤였다고 한다. 결국 같은 사람을 보고도 김성일은 겉모습의 인상만 본 반면, 황윤길은 그 본질을 꿰뚫어 본 차이가 아니었을까. 비극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사람의 의견이 정치적으로 무게를 가졌다는 사실에 있었다.

같은 사람을 두고 정반대의 인상으로 이야기하는 일, 그것도 어제와 오늘의 중론이 판이하게 다른 일은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북한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좌우, 노소를 불문하고 부정 일색이었다. 유례없는 ‘삼대 세습’의 장본인이며 이복형, 고모부 등을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비슷하게 보이려 일부러 살을 찌웠다는 그의 모습도 한껏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가령 현장지도에 나선 김정은이 옆의 장교에게 뭔가를 가리키며 물어보는 사진에 대해 “김정은이 ‘저 돼지 먹을 수 있나?’하고 물으니 장교가 ‘그건 거울인데요’라고 대답하는 중”이라고 제목을 붙인다든가.

그러나 지난 남북정상회담 뒤 그런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무식하고 잔인한 애송이 독재자’ 대신 ‘현명하고 지도력 있는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가 압도적이다. 그의 용모에 대해서도 ‘돼지’ 운운은 사라지고, ‘살만 조금 빼면 참 잘생긴 얼굴인데’, ‘볼수록 귀여워. 은근 매력이 있어’라는 등의 말들이 인터넷과 SNS를 메워간다.

그런데 이런 ‘하루아침에 이미지 쇄신’ 현상은 18년 전에도 있었다. 바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제1회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6월, 대한민국 국민은 화면 속에서 여유와 농담을 보이며 깍듯하게 남쪽 대통령을 대접하는 김정일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는 ‘흉악, 음험, 냉혹, 미치광이’ 등의 이미지로만 새기던 북의 최고지도자에 대해 ‘당당하다’, ‘지도자감이다’, ‘왠지 정이 간다’ 등의 이야기가 꽃피었다.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김정일 패션’이라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같은 사람에 대해, 한 번의 사건으로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일이 타당할까?안전한 일일까?어렵사리 꽃피운 남북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김정일과 북한에 대한 의심과 혐오감을 너무 간단히 신뢰와 호감으로 덮어 버렸던 까닭에, 뒤에 무력충돌이나 핵 개발 등 그런 신뢰와 호감을 위태롭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또다시 분위기가 반대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김정일 코스프레를 하던 청년들은 배신감에 떨었고, 노년층은 ‘그럴 줄 알았다’며 전보다 더한 반북 감정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이 남북한의 교류 성과가 온통 물거품이 되고 냉전 시기로 되돌아가 버리는 데 한몫했다.

남녀가 사귈 때도 상대의 한 가지 좋은 점, 한 가지 실망스러운 점에 평가가 널뛰기를 한다면 오래 갈 커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상대 지도자와 상대국의 일시적인 인상에, 한두 가지 장점이나 오점에 좌우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그리고 우리와 가능한 최선의 관계가 되게끔 인내심을 갖고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과 국민의식이 필요하다.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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